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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바람: 그물에 걸리지 않는 삶

[강판권 교수님] 바람: 그물에 걸리지 않는 삶

by 강판권 교수님 2021.11.22

바람은 변화의 상징이다. 바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의 삶도 바람처럼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인생도 바람처럼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처럼 산다는 것은 그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롭게 산다는 뜻이다. 석가도 바람처럼 살고 싶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수타니파타ㆍ뱀의품ㆍ무소뿔경』의 내용은 모든 생명체가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살아야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사소한 것에 걸려서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넘어지는 이유는 많지만 바람처럼 변화무쌍한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생존하는 대표적인 나무는 소나무와 은행나무이다. 암수한그루인 소나무는 바람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소나무의 열매인 솔방울은 결국 바람 덕분에 생긴 것이다. 솔방울은 둥글다. 소나무가 솔방울을 둥글게 만든 것은 데굴데굴 잘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솔방울은 혼자서 굴러갈 수가 없다. 다른 생명체가 대신 굴려주기도 하지만 바람은 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소나무는 바람을 무척 사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봄철 소나무 수꽃이 바람에 날리면 고통을 겪기 때문에 싫어한다.
암수딴그루 은행나무도 바람이 없으면 수정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봄철에 은행나무는 바람을 간절하게 기다린다. 인간은 수꽃이 바람에 날려 암꽃으로 날아가야만 은행나무의 열매를 볼 수 있다. 바람의 도움을 받아 수정하는 식물은 꽃은 노출되어 있다. 그래야만 바람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와 은행나무의 수꽃과 암꽃은 다른 식물의 꽃과 모양이 전혀 다르다. 특히 은행나무의 수꽃과 암꽃은 길쭉하다. 그러나 암그루의 암꽃은 꽃이 필 때 잎 색깔과 비슷해서 정말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꽃이 핀 줄도 잘 모른다.
그러나 은행나무의 열매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은행나무의 노란 잎도 사람들이 무척 좋아한다. 중국 사람들은 오리발을 닮은 은행나무의 잎을 보고 이 나무를 압각수라 불렀다. 은행나무 잎은 땅에 떨어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단으로 바뀐다. 그런데 바람은 비단 같은 은행나무 잎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암수한그루인 단풍나무도 바람을 무척 존경한다. 단풍나무의 열매도 바람을 만나야만 멀리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이 단풍나무의 이름을 ‘풍(楓)’으로 만든 것도 이 나무가 바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풍나무의 꽃은 여느 식물의 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열매는 전혀 다르다. 단풍나무의 열매는 대부분의 식물 열매가 둥근 것과 달리 프로펠러처럼 생겼다. 그래야만 열매가 바람에 잘 날려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람은 모든 생명체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삶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피해를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