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시인님] 거짓말에 갇힌 일상
[이규섭 시인님] 거짓말에 갇힌 일상
by 이규섭 시인님 2021.11.26
초겨울 햇살이 노랗게 부서져 내리는 오후, 교보문고에 들렀다. 마음에 꽃불을 밝히는 ‘광화문 글판’의 디자인과 위치가 바뀌었다. 100번째를 기념해 ‘마음을 잇다’ 캠페인 중이다. 매장은 코로나와 불황 속에서도 책을 벗 하려 온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고 그들의 표정은 꽃등처럼 환하다.
검색용 컴퓨터에 ‘날마다 만우절’을 입력하니 J16라인, 재고 1부라고 뜬다. 최근에 발표된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자 윤성희의 단편집이다. 책을 사려고 간 게 아니라 수상 작품인 표제작만 읽어보고 나오려는 심사였다. 집에 있는 책도 버려야 할 나이에 구입할 의향은 없었다. 재고가 한 권 뿐인데다 서가 사이에 있던 간이 의자가 사라져 읽기가 난감하여 구매했다.
투자를 했으니 수록된 열한 편의 단편을 읽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로 친근감이 든다. ‘여름방학’의 주인공은 오래 근무하던 회사에서 잘렸는데도 좌절하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꽃다발을 사고 축하주를 마시고 늘 불만이던 자신의 이름을 바꾼다. 극한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이 놀랍다.
‘어느 밤’에 나오는 육십 대 할머니는 놀이터에서 훔친 분홍색 킥보드를 타고 달리며 미움과 슬픔과 아픔의 시간들을 날려 보낸다. 킥보드를 타다 미끄러져 넘어져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뇌리 속으로 그녀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해바라기를 하며 망연히 시간만 축낼 노인세대에 생생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표제작 ‘날마다 만우절’은 착한 거짓말이다. 주인공 나의 가족은 삼 년 만에 고모를 만나러 간다. 아빠와 고모가 싸운 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지냈는데 고모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가족에게 고모는 “그거 거짓말이야. 다들 속았지.”라고 말하며 웃는다.
안도와 황당함이 지나간 뒤 “그런 거짓말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가족들은 각자가 품고 있던 이야기를 서로에게 꺼내 보인다. 거짓말일 수도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는 각자의 내밀한 사연이 거짓말의 외피를 두르고 가볍게 던져질 때 마음을 답답하게 옥죄던 비밀의 부피가 조금씩 줄어든다. 그 자리에 다른 것이 채워질 공간이 생긴다. 소설 말미에 화자의 아빠는 “우리 가족은 오늘을 만우절로 정했어. 해마다 오늘 거짓말을 해야 해.” 하고 선언한다. 거짓말이라도 속내를 털어놓는 하얀 거짓말을 하자는 의미로 읽힌다.
작가는 거짓말이라는 이야기의 방식을 통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을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만들어 부드럽게 하는 전환의 마법을 부린다.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부여한다. 따뜻한 시선으로 독자들을 위로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짓말은 일상이 됐다. 정치권이 쏟아내는 거짓말일수록 카멜레온이다. 금방 들통 날 새빨간 거짓말을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내뱉는다. 수시로 말을 바꾸고, 꼼수와 궤변에 국민만 짜증 난다. 자기 진영에 불리하면 가짜 뉴스로 내 몰고, 뒤집기 가짜 뉴스로 프레임을 건다. 거짓말 댐은 언젠가는 균열이 가고 무너지게 마련이다.
검색용 컴퓨터에 ‘날마다 만우절’을 입력하니 J16라인, 재고 1부라고 뜬다. 최근에 발표된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자 윤성희의 단편집이다. 책을 사려고 간 게 아니라 수상 작품인 표제작만 읽어보고 나오려는 심사였다. 집에 있는 책도 버려야 할 나이에 구입할 의향은 없었다. 재고가 한 권 뿐인데다 서가 사이에 있던 간이 의자가 사라져 읽기가 난감하여 구매했다.
투자를 했으니 수록된 열한 편의 단편을 읽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로 친근감이 든다. ‘여름방학’의 주인공은 오래 근무하던 회사에서 잘렸는데도 좌절하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꽃다발을 사고 축하주를 마시고 늘 불만이던 자신의 이름을 바꾼다. 극한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이 놀랍다.
‘어느 밤’에 나오는 육십 대 할머니는 놀이터에서 훔친 분홍색 킥보드를 타고 달리며 미움과 슬픔과 아픔의 시간들을 날려 보낸다. 킥보드를 타다 미끄러져 넘어져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뇌리 속으로 그녀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해바라기를 하며 망연히 시간만 축낼 노인세대에 생생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표제작 ‘날마다 만우절’은 착한 거짓말이다. 주인공 나의 가족은 삼 년 만에 고모를 만나러 간다. 아빠와 고모가 싸운 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지냈는데 고모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가족에게 고모는 “그거 거짓말이야. 다들 속았지.”라고 말하며 웃는다.
안도와 황당함이 지나간 뒤 “그런 거짓말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가족들은 각자가 품고 있던 이야기를 서로에게 꺼내 보인다. 거짓말일 수도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는 각자의 내밀한 사연이 거짓말의 외피를 두르고 가볍게 던져질 때 마음을 답답하게 옥죄던 비밀의 부피가 조금씩 줄어든다. 그 자리에 다른 것이 채워질 공간이 생긴다. 소설 말미에 화자의 아빠는 “우리 가족은 오늘을 만우절로 정했어. 해마다 오늘 거짓말을 해야 해.” 하고 선언한다. 거짓말이라도 속내를 털어놓는 하얀 거짓말을 하자는 의미로 읽힌다.
작가는 거짓말이라는 이야기의 방식을 통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을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만들어 부드럽게 하는 전환의 마법을 부린다.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부여한다. 따뜻한 시선으로 독자들을 위로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짓말은 일상이 됐다. 정치권이 쏟아내는 거짓말일수록 카멜레온이다. 금방 들통 날 새빨간 거짓말을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내뱉는다. 수시로 말을 바꾸고, 꼼수와 궤변에 국민만 짜증 난다. 자기 진영에 불리하면 가짜 뉴스로 내 몰고, 뒤집기 가짜 뉴스로 프레임을 건다. 거짓말 댐은 언젠가는 균열이 가고 무너지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