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 대표님] 아버지와 늦가을 소풍
[김재은 대표님] 아버지와 늦가을 소풍
by 김재은 대표님 2021.11.29
여기 이 땅의 아버지가 있다. 영특했지만 집안 사정상 겨우 소학교를 끝으로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었다. 땅이 없는 가난한 형편에 젊은 시절부터 들판이나 공사장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다. 결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꾸린 후에도 뼈가 빠지게 일을 했지만 삶은 빠듯했고, 게다가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해야 해서 땅 한 퇘기 마련도 어림없었다. 거기에 노동을 하다 다친 손가락이 치료비가 없어 굽어버린 것은 지난한 삶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평생을 농부로서 살아오다 보니 말 그대로 녹초가 되어버린 삶이 이제는 가누기 어려운 심신으로 남았다. 그래도 덕을 많이 쌓아온 터에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구순이 넘은지라 한 걸음 떼기가 너무 힘든 상태가 되었다. 집안에서는 서서 걷기보다 겨우겨우 기어 다녀야 일상을 꾸려갈 수 있을 정도이니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지팡이나 유모차에 의지하여 짧은 거리 산책도 가능했었는데.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누구의 도움 없이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아 얼마나 답답할지 자식으로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가끔씩 고향집에 들러 겨우 부축해서 식사를 하러 가고, 가까운 곳에 바람도 쐬러 가곤 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바람이라도 쐬어야겠다는 생각에 공주 갑사에도 들르고 모 방송에서 알게 된 순댓국집에도 들렀다. 아… 그런데 그 순댓국집 앞까지 차가 들어갈 수 없어 무려 100미터 가까이를 걸어야 했다. 나에게는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는 마라톤 거리보다 더 먼 거리였다.
부축은 했지만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어 쩔쩔매는 아버지를 보니 얼마나 짠하던지 마음이 아렸다. 중간중간에 주저앉아 버리는 아버지와 함께 내 마음도 사정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내가 왜 먼 순댓국집까지 모시고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이지 죄송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 딴에는 부모님을 ‘위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등에 땀이 흐르고 콧잔등에 뭔가 뭉클함이 맺혔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내리사랑과 자식의 치사랑이 어쩌면 같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작은 깨달음이 만추의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의 사랑에 감히 미칠 수 없음은 불문가지이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씀이 ‘내 생각’에만 쏠린 나머지 아버지의 마음은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공급자 발상만 했지, 고객 생각은 무시한 기업과 다를 게 없었다. 대한민국 행복디자이너라고 전국을 다니면서 사람의 마음 헤아리며 살아왔는데,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에 무안해졌다.
물론 바쁜 일상에 시간을 내서 부모님 한 번 뵙고 소소한 가을 소풍을 할 수 있었으니 그 행동 하나만으로도 기특한 게 아니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기는 하다. 그리고 아버지를 엄청 힘들게 해드렸지만 누워 계시지 않고 이 정도라도 움직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삶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이런 기회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는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하며 진심을 다해 부모님과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송구함이 있었지만 2021년 늦은 가을날 부모님과의 소풍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참 잘했다. 재은아!
평생을 농부로서 살아오다 보니 말 그대로 녹초가 되어버린 삶이 이제는 가누기 어려운 심신으로 남았다. 그래도 덕을 많이 쌓아온 터에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구순이 넘은지라 한 걸음 떼기가 너무 힘든 상태가 되었다. 집안에서는 서서 걷기보다 겨우겨우 기어 다녀야 일상을 꾸려갈 수 있을 정도이니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지팡이나 유모차에 의지하여 짧은 거리 산책도 가능했었는데.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누구의 도움 없이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아 얼마나 답답할지 자식으로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가끔씩 고향집에 들러 겨우 부축해서 식사를 하러 가고, 가까운 곳에 바람도 쐬러 가곤 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바람이라도 쐬어야겠다는 생각에 공주 갑사에도 들르고 모 방송에서 알게 된 순댓국집에도 들렀다. 아… 그런데 그 순댓국집 앞까지 차가 들어갈 수 없어 무려 100미터 가까이를 걸어야 했다. 나에게는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는 마라톤 거리보다 더 먼 거리였다.
부축은 했지만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어 쩔쩔매는 아버지를 보니 얼마나 짠하던지 마음이 아렸다. 중간중간에 주저앉아 버리는 아버지와 함께 내 마음도 사정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내가 왜 먼 순댓국집까지 모시고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이지 죄송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 딴에는 부모님을 ‘위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등에 땀이 흐르고 콧잔등에 뭔가 뭉클함이 맺혔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내리사랑과 자식의 치사랑이 어쩌면 같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작은 깨달음이 만추의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의 사랑에 감히 미칠 수 없음은 불문가지이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씀이 ‘내 생각’에만 쏠린 나머지 아버지의 마음은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공급자 발상만 했지, 고객 생각은 무시한 기업과 다를 게 없었다. 대한민국 행복디자이너라고 전국을 다니면서 사람의 마음 헤아리며 살아왔는데,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에 무안해졌다.
물론 바쁜 일상에 시간을 내서 부모님 한 번 뵙고 소소한 가을 소풍을 할 수 있었으니 그 행동 하나만으로도 기특한 게 아니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기는 하다. 그리고 아버지를 엄청 힘들게 해드렸지만 누워 계시지 않고 이 정도라도 움직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삶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이런 기회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는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하며 진심을 다해 부모님과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송구함이 있었지만 2021년 늦은 가을날 부모님과의 소풍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참 잘했다. 재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