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메주콩을 쑤는 풍경
[권영상 작가님] 메주콩을 쑤는 풍경
by 권영상 작가님 2021.12.02
기온이 점점 떨어진다.
그럴수록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진다. 바깥에 나갈 일도 그만큼씩 점점 줄어든다. 방 안에서 미적대다가 9시가 넘어서야 마당에 슬쩍 나가본다. 뜰마당에 하얗게 내린 서리가 아침 햇빛에 다 녹았다.
사철나무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사는 수원집 이쪽 마당 끝에 안 보이던 내걸이솥이 놓였다. 장작불이 저 혼자 활활 탄다. 뭘 끓이려는 모양이다. 잠시 만에 그 집 내외분이 나오더니 솥뚜껑을 연다. 하얀 김이 뭉긋 솟는다. 김을 헤치고 내외분이 솥 안을 들여다본다.
“뭐 맛난 거 끓이시나 보죠?” 아침 인사 삼아 여쭈었다.
그제야 그들 내외분도 나를 보았는지 허리를 편다.
“저어!” 수원집 아저씨가 운을 떼어놓고는 곁에 선 아내에게 대답 기회를 넘긴다.
“네에. 아 저, 콩을 쑤고 있어요.”
그러고 나서야 수원집 아저씨가 “메주콩요” 하신다. 배려심이 많은 이가 수원집 아저씨다.
“아, 메주콩요! 참 부럽습니다.”
메주콩이라는 말에 내가 그만 늦가을 정서에 확 취했나 보다. 그렇게 말했다. 물씬 김 솟는 솥을 들여다보는 두 분의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장을 담그기 위해 메주콩을 쑤는 풍경을 바로 옆집에서 본다.
고향 부모님도 이즈음이면 메주콩을 쑤셨다.
식구가 많았으니 메주콩도 가마솥에다 쑤셨다. 시골이야 의당 소여물 끓이는 가마솥을 깨끗이 씻고 거기다 몇 말씩 쑤었다. 콩이 익을 무렵 가마솥 뚜껑을 열어보면 콩들 사이로 허연 김이 무럭무럭 올랐다.
이 추운 늦가을 아침,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 안성에 내려와 부모님 계시던 고향의 가을을 생각하려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제는 텃밭에 몇 이랑 키운 김장무도 다 거두어들이고, 파도 뽑아 예전 아버지가 하시던 대로 구덩이를 파고 반쯤 세워 묻었다. 남아 있는 거라곤 방풍과 가을 상추다. 아침엔 춥지만 낮이 되면 그런대로 기온이 올라가는 바람에 이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
방에 들어가 지난봄에 떼어두었던 뽁뽁이를 꺼내 창문마다 다시 붙이고 겨울용 커튼을 달고 있을 때다.
수원집 아저씨가 찾아왔다.
“고향 생각나실 것 같아 좀 가져왔습니다. 한번 맛보시라고.”
커피 잔에 잘 익은 메주콩을 조곰 담아왔다.
“메주콩 쑤는 걸 보면 괜히 먹고 싶잖아요.” 그러는 그분을 잡고 메주콩 담아온 커피 잔에 초콜릿을 넣어드렸다.
수원집 아저씨가 그런 분인 줄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참 다정하다. 내 마음을 짐작하시고 메주콩을 손수 가져오시다니. 지난겨울, 눈 내리던 어느 이슥한 밤엔 난로를 새로 놓았다며 고구마 구운 걸 신문지에 싸서 호호 불며 가져오시기도 했다.
아내가 내일쯤 안성으로 내려와 동치미를 만들기로 했다. 그걸 잘 만들어 한겨울, 어느 눈 오는 날이면 나도 동치미 맛보시라며 한 보시기 가져다드려야겠다.
시골의 겨울은 도심보다 훨씬 춥다. 그러나 다정한 이웃이 있어 그래도 덜 추운 편이다.
그럴수록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진다. 바깥에 나갈 일도 그만큼씩 점점 줄어든다. 방 안에서 미적대다가 9시가 넘어서야 마당에 슬쩍 나가본다. 뜰마당에 하얗게 내린 서리가 아침 햇빛에 다 녹았다.
사철나무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사는 수원집 이쪽 마당 끝에 안 보이던 내걸이솥이 놓였다. 장작불이 저 혼자 활활 탄다. 뭘 끓이려는 모양이다. 잠시 만에 그 집 내외분이 나오더니 솥뚜껑을 연다. 하얀 김이 뭉긋 솟는다. 김을 헤치고 내외분이 솥 안을 들여다본다.
“뭐 맛난 거 끓이시나 보죠?” 아침 인사 삼아 여쭈었다.
그제야 그들 내외분도 나를 보았는지 허리를 편다.
“저어!” 수원집 아저씨가 운을 떼어놓고는 곁에 선 아내에게 대답 기회를 넘긴다.
“네에. 아 저, 콩을 쑤고 있어요.”
그러고 나서야 수원집 아저씨가 “메주콩요” 하신다. 배려심이 많은 이가 수원집 아저씨다.
“아, 메주콩요! 참 부럽습니다.”
메주콩이라는 말에 내가 그만 늦가을 정서에 확 취했나 보다. 그렇게 말했다. 물씬 김 솟는 솥을 들여다보는 두 분의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장을 담그기 위해 메주콩을 쑤는 풍경을 바로 옆집에서 본다.
고향 부모님도 이즈음이면 메주콩을 쑤셨다.
식구가 많았으니 메주콩도 가마솥에다 쑤셨다. 시골이야 의당 소여물 끓이는 가마솥을 깨끗이 씻고 거기다 몇 말씩 쑤었다. 콩이 익을 무렵 가마솥 뚜껑을 열어보면 콩들 사이로 허연 김이 무럭무럭 올랐다.
이 추운 늦가을 아침,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 안성에 내려와 부모님 계시던 고향의 가을을 생각하려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제는 텃밭에 몇 이랑 키운 김장무도 다 거두어들이고, 파도 뽑아 예전 아버지가 하시던 대로 구덩이를 파고 반쯤 세워 묻었다. 남아 있는 거라곤 방풍과 가을 상추다. 아침엔 춥지만 낮이 되면 그런대로 기온이 올라가는 바람에 이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
방에 들어가 지난봄에 떼어두었던 뽁뽁이를 꺼내 창문마다 다시 붙이고 겨울용 커튼을 달고 있을 때다.
수원집 아저씨가 찾아왔다.
“고향 생각나실 것 같아 좀 가져왔습니다. 한번 맛보시라고.”
커피 잔에 잘 익은 메주콩을 조곰 담아왔다.
“메주콩 쑤는 걸 보면 괜히 먹고 싶잖아요.” 그러는 그분을 잡고 메주콩 담아온 커피 잔에 초콜릿을 넣어드렸다.
수원집 아저씨가 그런 분인 줄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참 다정하다. 내 마음을 짐작하시고 메주콩을 손수 가져오시다니. 지난겨울, 눈 내리던 어느 이슥한 밤엔 난로를 새로 놓았다며 고구마 구운 걸 신문지에 싸서 호호 불며 가져오시기도 했다.
아내가 내일쯤 안성으로 내려와 동치미를 만들기로 했다. 그걸 잘 만들어 한겨울, 어느 눈 오는 날이면 나도 동치미 맛보시라며 한 보시기 가져다드려야겠다.
시골의 겨울은 도심보다 훨씬 춥다. 그러나 다정한 이웃이 있어 그래도 덜 추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