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 교수님] 우화등선: 노랑나비로 변한 은행잎
[강판권 교수님] 우화등선: 노랑나비로 변한 은행잎
by 강판권 교수님 2021.12.13
신선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삶이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신선을 의미한다. ‘우화’는 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방이나 나비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변신은 힘든 삶에서 나비처럼 날아가고 싶은 인간의 꿈이기도 하다. 우화등선은 중국 북송시대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전적벽부(前赤壁賦)』 중 “경쾌하기는 마치 속세를 버리고 우뚝 서서 깃을 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만 같다(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에서 유래했다.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가로수 중 가장 많다. 그래서 차들이 달리면 떨어진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날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바람에 날아가는 은행잎이 마치 노랑나비처럼 보였다. 오리발을 닮은 은행잎은 노랑나비의 날개와 닮았다. 은행잎이 나비로 변해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이유는 공해로 찌든 도시를 벗어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은행나무가 공해에 강해서 심었지만, 은행나무는 떠날 수가 없다. 그래서 잎이라도 떠나보내고 싶었을지 모른다. 나비 중에도 한 곳에 살지 않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경우가 있다. 제왕나비로 불리는 모나크나비(Monarch butterfly)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알을 낳은 후 겨울을 보내기 위해 4,000km 떨어진 멕시코로 날아간다. 멕시코의 소나뭇과 늘푸른큰키나무 전나무는 모나크나비의 터전이다.
나비는 인간이 힘들 때 꿈꾸는 신성한 존재이다. 그리스어 프쉬케(Psyche)는 영혼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호접(胡蝶)이고, 우리나라에서는 호랑나비 혹은 범나비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호접을 호랑나비 혹은 범나비로 부르는 이유는 날개의 모양이 호랑이 무늬와 닮았기 때문이다. 호접의 ‘호’는 가래나뭇과 갈잎큰키나무 호도(胡桃), 즉 호두나무처럼 서역에서 온 동식물에 붙이는 접두어이다.
인간이 나비를 신선에 비유한 이유는 번데기에서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진정 신선을 꿈꾼다면 스스로 변해야만 한다. 스스로 변하지 않고서는 어떤 경우에도 신선의 삶을 실현할 수 없다. 공해로 찌든 도시가 아니라 맑은 공기로 가득한 도시로 만드는 것도 신선의 삶을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현재 제왕의 나비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개체 수가 엄청나게 줄었다. 제왕의 나비가 애벌레 상태에서 먹는 것은 박주가릿과의 밀크위드(milkweed) 종류의 액이다. 암컷 모나크나비는 박주가리 식물에 한 번에 400~1000개의 알을 낳는다. 그러나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애벌레가 먹는 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이 먹을 양식마저 없애버리는 탐욕을 서슴없이 자행하지만, 그 결과가 곧 자신을 죽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나비가 생존할 수 없는 지구는 인간도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일상에서 한 마리의 나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자신 곁에 행운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 전국시대 장자가 ‘호접지몽(胡蝶之夢)’에서 자신을 나비와 한 몸으로 여긴 사례는 기후 위기와 생태위기를 맞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물아일체 사상은 인간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가로수 중 가장 많다. 그래서 차들이 달리면 떨어진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날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바람에 날아가는 은행잎이 마치 노랑나비처럼 보였다. 오리발을 닮은 은행잎은 노랑나비의 날개와 닮았다. 은행잎이 나비로 변해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이유는 공해로 찌든 도시를 벗어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은행나무가 공해에 강해서 심었지만, 은행나무는 떠날 수가 없다. 그래서 잎이라도 떠나보내고 싶었을지 모른다. 나비 중에도 한 곳에 살지 않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경우가 있다. 제왕나비로 불리는 모나크나비(Monarch butterfly)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알을 낳은 후 겨울을 보내기 위해 4,000km 떨어진 멕시코로 날아간다. 멕시코의 소나뭇과 늘푸른큰키나무 전나무는 모나크나비의 터전이다.
나비는 인간이 힘들 때 꿈꾸는 신성한 존재이다. 그리스어 프쉬케(Psyche)는 영혼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호접(胡蝶)이고, 우리나라에서는 호랑나비 혹은 범나비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호접을 호랑나비 혹은 범나비로 부르는 이유는 날개의 모양이 호랑이 무늬와 닮았기 때문이다. 호접의 ‘호’는 가래나뭇과 갈잎큰키나무 호도(胡桃), 즉 호두나무처럼 서역에서 온 동식물에 붙이는 접두어이다.
인간이 나비를 신선에 비유한 이유는 번데기에서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진정 신선을 꿈꾼다면 스스로 변해야만 한다. 스스로 변하지 않고서는 어떤 경우에도 신선의 삶을 실현할 수 없다. 공해로 찌든 도시가 아니라 맑은 공기로 가득한 도시로 만드는 것도 신선의 삶을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현재 제왕의 나비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개체 수가 엄청나게 줄었다. 제왕의 나비가 애벌레 상태에서 먹는 것은 박주가릿과의 밀크위드(milkweed) 종류의 액이다. 암컷 모나크나비는 박주가리 식물에 한 번에 400~1000개의 알을 낳는다. 그러나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애벌레가 먹는 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이 먹을 양식마저 없애버리는 탐욕을 서슴없이 자행하지만, 그 결과가 곧 자신을 죽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나비가 생존할 수 없는 지구는 인간도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일상에서 한 마리의 나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자신 곁에 행운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 전국시대 장자가 ‘호접지몽(胡蝶之夢)’에서 자신을 나비와 한 몸으로 여긴 사례는 기후 위기와 생태위기를 맞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물아일체 사상은 인간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