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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잊었던 이름들을 떠올리는 일

[한희철 목사님] 잊었던 이름들을 떠올리는 일

by 한희철 목사님 2021.12.29

흘러가는 시간을 두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하는 말은 허사가 아닙니다. 쏜 화살은 시위를 떠나 과녁을 향해 날아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총알처럼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온몸을 흔들며 앞을 향해 날아갑니다. 화살의 속도는 어렴풋 눈으로 확인할 수는 있지만, 걸음으로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바라보기는 하지만 따라갈 수는 없는, 세월을 쏜살에 비긴 것이 절묘하다 싶습니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를 보내며 다시 한번 세월의 수레바퀴를 생각합니다. 동지를 보내고 나면 노루 꼬리 만큼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해 마침내 ‘춘분’에 이르러 빛과 어둠이 균형을 맞춥니다. 그런 뒤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여 낮이 가장 긴 ‘하지’에 이르게 되지요. 마치 밝음의 언덕을 넘은 듯 그 뒤로는 낮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다시 ‘추분’에 이르러 숨을 고릅니다. 그런 뒤 손톱 자라듯 조금씩 자란 밤이 ‘동지’에서 절정을 이루고요.
언제 한 번 ‘다사다난(多事多難)’하다 말하지 않은 해가 따로 있었을까요? 하지만 2021년은 유난스러운 한 해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시간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습니다. 온갖 불편을 감수하다가 잠깐 숨통이 트인다 싶으면 다시 악화, 부침을 거듭한 한 해였습니다. 이런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는 갈수록 인내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요.
코로나19는 마스크 쓰기를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를 잡게 했습니다. 어린 아기가 당연한 듯이 아무 투정도 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만 합니다. 상대방의 입모양을 볼 수가 없어 말배우기가 늦는 아이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자기만의 구석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한 줌 햇볕에 언 손을 녹이고 있는 형국이다 싶습니다.
다시 맞은 세모(歲暮)의 시간,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까 생각해 보던 중 어릴 적 친구들과 했던 놀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글자를 찾아내는 놀이였습니다. 술래가 안 보는 사이 땅에다가 글자를 새겼습니다. 대개는 막대기로 땅을 파내 글씨를 썼습니다. 그런 뒤 다시 흙으로 글자를 메웠지요. 발로 꾹꾹 밟아 글자를 지웠습니다.
술래의 몫은 숨긴 글자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유적지를 탐사하는 이들이 조심스레 붓으로 흙을 털어내듯이 땅에 묻힌 글씨를 찾아냈습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냥 맨땅과 글씨를 새겼던 자리는 분명히 달라 마침내 글자가 드러났습니다. 대개의 놀이가 그러했듯이 글자를 찾아낼 시간을 따로 정한 것이 아니어서, 서로 마음 급할 일도 없었고요.
힘든 한 해를 보내는 세밑의 시간, 어릴 적 글자 찾기 놀이가 떠올랐던 것은 마음속에 묻혀 있던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땅에 글씨를 쓴 뒤 흙으로 메웠듯이 시간이 지나가며 자연스럽게 마음에 묻힌 이름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사랑의 안부를 전하는 일이 마음 따뜻한 일로 다가옵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로 외딴 섬처럼 서로가 고립되는 이때, 생각지 못한 누군가로부터 사랑의 안부를 받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더없이 고마운 일이겠다 싶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