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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호랑이의 미덕

[한희철 목사님] 호랑이의 미덕

by 한희철 목사님 2022.01.05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구정이 지나야 임인년이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호랑이의 해를 맞았습니다. 세상살이에 지쳐 우리의 모습이 왜소해졌다면, 포효 한 번으로 온 산을 쩌렁쩌렁 울게 했던 호랑이의 기개를 배우는 한 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호랑이의 해를 맞아 전해져 내려오는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어떤 마을에 시아버지를 정성스레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아버지가 장을 갔는데, 날이 어두워지도록 돌아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걱정을 하던 며느리는 아기를 등에 업은 채 마중을 나갔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니 어느새 동네 뒷산 고갯마루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저만치 등잔불 같은 밝은 불빛 두 개를 보고 가까이 다가간 며느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덩치가 남산만한 호랑이가 술에 취한 채 바위틈에 웅크리고 잠든 사람을 막 해치려던 참이었는데, 행색을 보니 시아버지였습니다.
호랑이가 발을 들어 치려고 하는 순간 “안 돼!” 며느리는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치며 달려가 시아버지를 끌어안았습니다. 깜짝 놀란 호랑이는 흠칫 동작을 멈췄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여인은 등에 업고 있던 아기를 내려놓으며 호랑이 앞에 사정을 했습니다. “이 아이를 대신 드릴 터이니, 제발 우리 아버님은 해치지 말아 주세요.”
아기를 내려놓은 며느리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시아버지를 들쳐 업고는 산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야 정신이 번쩍 든 며느리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다음날 새벽 아무것도 모른 채 잠에서 깬 시아버지가 평상시처럼 손자를 찾았습니다. 며느리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전날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시아버지는 벌컥 방문을 열고는 고갯길을 향해서 내달렸습니다. 며느리도 울면서 쫓아갔고요. 고갯마루에 이르러 살펴보니 아기도 호랑이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한 사람이 아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건넛마을 부잣집 주인이 새벽에 보니 낟가리 위에 웬 아기가 앉아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넛마을로 달려갔습니다. 가서 보니 어젯밤 호랑이에게 던져주었던 아기가 낟가리 위에서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며느리가 달려가 덥석 아기를 품에 안았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부잣집 주인이 며느리에게 사연을 물었습니다. 며느리는 전날 있었던 모든 일을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하늘이 당신의 효성에 감동해서 이 아기를 살려주었군요. 이 낟가리의 주인은 이 아이입니다.” 며느리는 사양을 했지만 주인은 하인들을 시켜 낟가리로 쌓아두었던 쌀 백 섬을 여인의 집에 실어다 주게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우리 옛이야기 속에 담긴 호랑이의 대부분은 누군가를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의 미덕을 지킨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더욱 의미 있는 세상이 되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