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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대표님] 너그러움 한 그루 키워볼까요

[김재은 대표님] 너그러움 한 그루 키워볼까요

by 김재은 대표님 2022.01.18

바라고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해가 되었다. 60간지의 39번째인 임인년은 내가 태어난 바로 그 해이다. 아, 벌써 60번째, 정확하게는 61번째 새해를 맞은 것이다.
60쯤의 나이가 되면 누군가는 인생 2막이라 하고, 누군가는 인생 3쿼터라고 한다. 유엔의 기준에 의하면 아직 청년이기도 하고, 어떤 특별한 사람은 새로운 시작이라며 각오를 새롭게 다지기도 한다. 이렇듯 60년의 시간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여기서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꼰대이다. 추운 겨울 빙판길에서 아차 하면 미끄러져 넘어지듯이 나이가 들어 ‘고집’과 ‘아집’의 우물에 빠지면 나도 모르게 ‘꼰대’ 이름표를 붙이게 된다. 그런데 꼰대로의 ‘변신’이 단지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해봐서 아니까 옳다는 것, 그러니 내 말을 들어보라’는 것에 집착하여 소통과 관계의 너그러움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너그럽다’는 사전에 ‘마음이 넓고 아량이 있다’로 되어 있다. 생김새나 성품이 매우 상냥하고 너그럽다는 ‘서글서글하다’나, 마음이 너그럽고 크다는 ‘관대하다’와 이웃사촌지간이다. ‘원만하다’나 ‘대범하다’와도 그리 멀지 않다.
이들을 바라보며 강 건너에서 잔뜩 찌푸리고 있는 아이들 이름은 ‘좀스럽다’, ‘옹졸하다’ 그리고 ‘여유가 없다’이다. 이해하고 인정하고 배려하기보다는 따지고 비난하고 타인의 불행을 즐기기까지 한다. 뭔가 꼬투리가 조금만 보여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결된 존재이다. 나에게서 시작된 비난과 좀스러움, 옹졸함은 그대로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상대방을 향한 송곳이 무심코 나를 찌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용서가 나를 위한 자비행(慈悲行)이듯이 너그러움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선물이다. 누군가를 향한 판단과 비판, 옳고 그름 등을 내려놓고 그냥 그대로 지켜봐 주고 인정하다 보면 그대로 편안함이 밀려온다. 상대는 물론 나에게도 자유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이런 엄청난 행운을 걷어차는 것은 어리석은 삶이다. 결코 지혜로운 삶이 아니다.
순간 어디선가 보았는지 희미하지만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이 살짝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보편적 인간성’이란 힘든 일이 다가왔을 때 세상에서 나만 힘들다는 억울함과 고립감을 느끼는 대신, 나를 포함해서 인간은 누구나 나약하고 불완전하며, 생로병사나 마음처럼 할 수 없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 등 다양한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온전히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힘들수록 나 못지않게 고통을 겪고 있을 이웃들을 떠올리며 고립감보다는 연대감을,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인간성에서 너그러움이 나오는 것은 흘러가는 강물이나 불어오는 바람처럼 자연스럽다.
2022년 새해, 삶의 화두로 ‘너그러운 삶’을 선택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과 삶에 대해 더 진실로 알아가는 노력을 다하려 한다.
유홍준 교수가 조선 문장가의 글귀를 정리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너그러움의 원천일거라 믿기 때문이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온갖 비난과 삿대질이 난무하는 세상에 ‘너그러움’ 한 조각만큼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을까. 그러니 마음을 모아 ‘너그러움’이라는 나무를 함께 키워보면 참 좋겠다. 너도 나도 우리도 좀 더 너그러워져야 진정 새해를 맞았다 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