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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어른의 말 한마디

[이규섭 시인님] 어른의 말 한마디

by 이규섭 시인님 2022.05.06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이 땅의 아이들이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홀대받던 시절, 어린이들에게 초록의 꿈과 희망을 주자는 뜻깊은 날이다. 그 시절 소파 방정환(1899∼1931년) 선생이 어린이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다음 세대를 잘 키워야 한다며 앞장선 것은 선각자적 혜안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2년 5월 1일 방정환과 김기진을 중심으로 한 천도교소년회가 이날을 어린이날로 선포한 것이 우리나라 어린이날의 출발이다. 이듬해인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행사 때 방정환은 ‘어린이 선언’과 함께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선언으로 1924년에 발표된 ‘제네바 국제어린이헌장’ 보다 앞서는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뜻깊은 일이다.
이후 어린이날은 전국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로 발전했다. 다만 5월 1일이 노동절과 겹쳤기 때문에 1927년부터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어린이날 행사를 5월 첫째 일요일에 열었다. 일제는 어린이날 행사가 민족의식을 높일 것을 염려해 1937년 어린이날 행사를 금지시켰다. 광복 후 어린이날 첫 기념식은 1946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인 5월 5일에 열렸는데, 이후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을 없애려고 아예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이다.
올해 어린이날 행사는 100주년을 맞아 다채롭게 열린다. 5월 한 달간 전야제를 시작으로 거리행진, 연극, 음악회, 영화 등 축제가 이어진다. 눈길을 끈 행사는 ‘100년 만의 어린이날 재현 행진’이다. 1923년 어린이날, 어린이들은 선전지를 어른들에게 나눠주고 깃대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행진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 우여곡절 끝에 열렸다고 한다. 지난 5월 1일 어린이 100명과 시민들은 서울 종로구 당주동 방정환 생가 터에서 출발하여 광화문대로와 종로대로를 거쳐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까지 2.1㎞를 행진했다. 대교당 앞에는 ‘세계어린이운동 발상지’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자체에서도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지자체가 발행하는 소식지의 어린이 기자 8명이 12가지 항목의 설문을 만들었다. 자신이 속한 학교 반 친구들에게 내용을 설명하고 작성했다. 설문에 응답한 어린이는 165명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설문엔 선물 받기가 43%로 가장 많았다. 엄마, 아빠랑 놀기 23%, 잔소리 안 들어보기 7% 순이다. ‘학원은 몇 개 다니나요?’ 응답엔 4개 이상이 40%, 3개 24%, 2개 16%, 1개 13%로 10명 중 9명은 한 가지 이상 학원을 다니는 것으로 나타나 과외 의존도가 심각함을 드러냈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비 지출이 23조 원이라는 통계가 실감난다.
어린이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설문도 흥미롭다. 들었을 때 힘이 되거나 기분 좋았던 말 ‘베스트 8’에는 “잘 하네”, “힘내”, “사랑해”, “고마워”, “괜찮아”, “할 수 있어”, “뭐 먹자”, “시간이 많이 남았어”다. 칭찬받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어른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