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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상록수

by 청주교차로 윤기윤기자 2014.07.15

상록수란 계절에 관계없이 잎의 색이 항상 푸른 나무를 말한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도 주인공 동혁이 동네어귀의 상록수들을 보면서 ‘오오, 너희들은 기나긴 겨울의 눈바람을 맞고도 싱싱하구나! 저렇게 시퍼렇구나!’라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지 않던가. 그는 함께 농민운동을 하며 사랑하던 연인 영신이 죽었지만, 홀로 그 사랑을 가슴에 품고 끝까지 푸른 의지를 지켜나간다. 그래서 평생의 뜻을 품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을 빗대어 상록수라고 칭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분을 만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대학시절 문학동아리 ‘창(窓)문학’ 선배(당시 충북대 교수)로 일별했으니, 무려 30년이 흘렀던 것이다. 그분은 60년대 충북대학교 월악연습림 산림감시원으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의 직무상 늘 만나는 사람은 화전민이었다. 화전민들은 산에 밭을 일구어 사는 사람들이다. 가난한 화전민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제대로 한글조차 알지 못했다. 일이 바쁘면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산림을 돌보는 그분의 집 앞마당에 아이들은 재미삼아 몰려와 놀곤 했다.
그분은 갈 곳 마땅치 않았던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기초를 닦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가르쳤다. 산수는 집에 있는 콩을 도구로 이치를 깨우쳐줬다. 그러자 아이들의 실력이 쑥쑥 올라, 학교에도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 그 덕분에 화전민 아이들 절반이상이 학업성취상을 받기도 했다. 그 아이들 가운데 전교 2등도 할 만큼 실력이 뛰어난 아이도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은사가 불시에 방문하였다. 방안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부를 가르치던 그분을 보고, 교수는 불같이 화를 냈다.
“뭐하는 놈이야! 하라는 산림감시는 안하고, 네가 지금 학교선생으로 이곳에 와 있는 줄 알아?”
호통 치는 교수 앞에서 그분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때 화전민들이 몰려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다. 교수는 화전민들 앞에서 보란 듯이 더욱 언성을 높여 호통치고 있었다. 그때 화전민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교수님, 이 분은 우리들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분의 직업은 불법적으로 화전을 일구지 못하게 하는 산림감시원인 것도 잘 압니다. 생각해보세요. 한 사람의 힘으로 이렇게 넓은 산림을 모두 감시할 수 있겠어요? 이분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니,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양심껏 알아서 법을 지킬 수밖에 없어요. 이보다 더 현명한 산림감시가 어디 있겠어요?”
그날 밤, 화전민들과 음식을 같이 하면서 은사는 ‘허, 참’만을 연발하며 웃기만 했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분은 본격적으로 화전민이 살고 있는 그곳에 분교를 세우려고 동분서주했다. 분교 설립에 필요한 땅을 확보하기 위해 지주를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마침내 월악분교(1996년 폐교)가 세워졌다. 그렇게 은사의 신임을 받게 된 그분은 훗날 대학 서무과에서 일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일본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해 마침내 충북대 임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분이 바로 지금은 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하였지만,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늘 푸른 상록수처럼 여전히 충북대 평생교육원에서 수필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김홍은 수필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