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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공간

삶의 공간

by 청주교차로 윤기윤 기자 2014.07.08

“답답해요. 좀 나갔다 올게요.”
아이들로부터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평면의 공간을 이리저리 구획하여 놓은 아파트는 사실 주거인에게 어떤 영감을 주거나 흥미를 주는 공간이 되질 못한다. 편리와 효율 면에서 아파트가 가지는 장점은 남다르다 하겠으나 비자연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점에서 성장기의 아이들이 몸담고 살아가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서적으로도 경직된 구조이거니와 창의적이고 다양한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유연성이 부족한 건축물이다. 따라서 요즘 청소년들의 빈번한 아파트 투신 사고는, 단조롭고도 충동적인 감정이 빚어낸 ‘아파트 키드’의 불행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린 시절을 시골집에서 자라고 중고등학교 시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춘기의 한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살았던 집은 허름하고 그저 그런 동네의 한 집이었을 뿐, 근사한 건축양식의 전원주택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고 초라한 집이라도 개인 주택이란 일단 자연과의 친밀성에서 아파트보다 윗길이다. 봄의 따스하고 포근한 햇살과 가을의 맑고 그윽한 햇살의 차이는 마루에 걸터앉아 온몸을 대기에 내어맡길 때라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마당의 나무 한 그루가 겪어내는 사계절의 풍상을 지켜보며 삶의 애환을 이해할 수 있고, 앞마당과 뒤란을 오가며 삶이란 양면성이 있음을 몸으로 체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집이 직접 어떤 교훈을 즉각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안에 몸담고 살아가다 보면 내재적으로 절로 익혀지는 삶의 근성(根性)이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마당에서 댓돌로, 다시 마루로 오르고, 다락이 있으며, 다시 방으로 내려오고, 햇살 환한 앞마당에서 이끼가 자라는 어둑신한 뒤란으로 돌아갈 때, 삶이란 이렇게 오르고 내려가는 과정이며 요철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은연중 체화하게 된다. 그러면 요즘 대다수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의 주민들은 모두 불행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 걸음만 나서보라. 곳곳이 산책길이고 공원이며 문화시설이다. 가슴과 머리가 행복해지려면 손발이 부지런해야 한다.
지난 토요일, 아파트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여름빛이 무척이나 매혹적이어서 아파트를 나섰다. 앞쪽으로 나가면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지나 앞산으로 갈 수 있고, 옆으로 나가면 생활체육시설이 다문다문 친근한 이웃처럼 서 있는 놀이터와 공원을 지나 시립정보도서관으로 갈 수 있다. 어느 길로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계절의 정취를 담고 있는 각양각색의 나무들과 다양한 표정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거느리고 있다. 갑갑하다고 한탄하지만 말고 나서 보면 바로 아름다운 산책길과 공원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 길을 소요하다 보면 문득 정겨운 도서관에 이끌리듯 들어가, 돌아오는 길에는 시인처럼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풍경을 누릴 수도 있겠다.
요즘 나는 내 이름으로 등재되지 않은, 내 소유의 대지와 나무들과 산책길들의 지평을 점차 넓혀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