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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상 작가님] 미루나무 추억

[권영상 작가님] 미루나무 추억

by 권영상 작가님 2018.07.05

아침 산길을 오를 때다. 노란 낙엽 한 장이 발 앞에 떨어져 있다.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세모꼴 미루나무 잎이다. 미루나무가 여기 서 있었다. 늘 다니던 길에서 조금만 비켜서도 이런 뜻밖의 나무를 만난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 나무를 쳐다본다. 두 아름드리는 족히 되겠다. 높은 우듬지 이파리들이 바람에 잘잘잘 소리를 내며 반짝인다.
미루나무를 못 보고 산 지 오래다. 30여 년 전만해도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엔 미루나무가 제법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휴일이면 딸아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미루나무 가로수 그늘 길을 따라 말죽거리까지 다녀오곤 했다. 그땐 마을 골목에도 한두 그루쯤 미루나무가 서 있었다. 봄물이 오를 때면 파릇한 어린 가지를 꺾어 호드기를 만들어 불기도 하고, 그 잎으로 동네 아이들에게 모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그 좋던 미루나무 가로수들도 남부순환로가 만들어지면서 톱날에 다 잘려나가고, 전신주 노릇을 하던 골목 미루나무들도 자동차에 찢기고 긁히다가 끝내는 상처투성이로 베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그게 사람들 손에 상처받으며 살아가던 미루나무 최후의 모습이지 싶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앞에는 미루나무 밭이 있었다. 실개천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거기엔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서 있었다. 구름에 닿을 듯이 키가 컸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미루나무 잎 잘잘거리는 소리가 심해 공부를 할 때면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였다. 가끔 개천으로 고기를 잡으러 갈 때면 우리는 꼭 그 미루나무 밭을 지났다. 유독 미루나무 밭에 들어서면 바람이 심했다. 여자애들은 바람에 머리채를 빼앗길까 봐 미루나무 그늘 밑을 발이 재게 달아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곳을 벗어나면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애들은 미루나무에 바람을 불러들이는 요정이 산다고 말했다.
읍내로 가는 신작로 양쪽엔 키가 큰 미루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신작로 한가운데 서서 보면 신작로 소실점이 가물가물했다. 선생님을 따라 교실 바깥에 나와 풍경화를 그릴 때면 미루나무가 선 신작로를 곧잘 그리곤 했다. 미술시간에 배운 원근법이라는 기법을 표현해내는 데엔 미루나무 신작로만 한 게 없었다.
그 시절, 미루나무가 어린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건 그 높이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고층빌딩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나무로 만들어 세운 전봇대나 마을의 종각 보다야 미루나무의 위용이 훨씬 대단했다. 미루나무 우듬지엔 언제나 까치집이 있었다. 바람이 불 때에 보면 까치들은 그 높은 나무 꼭대기 까마득한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놀았다. 그러다가도 해 질 무렵이면 모두 제 집을 찾아들었다.
‘저렇게 높은 곳에서 어떻게 까치가 살까? 거기 공기는 있을까?’
어린 나는 그게 또 궁금했다. 그러면서 나는 미루나무를 통해 높이라는 것을 천천히 배워나갔다. 가끔 큰 도시에 나갔다 온 아이들이 제가 보았다는 높은 건물을 말할 때면 나는 ‘학교 앞 미루나무만큼 높아?’ 하고 물었다. 그 옛날 나는 미루나무의 높이를 부러워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미루나무를 쳐다본다. 나무는 그 옛날의 나무인데 나는 이미 그 옛날의 순진했던 내가 아니다. 세상의 높고 낮은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린 때 묻은 내가 되었다. 교실 창에 턱을 괴고 미루나무를 바라보며 높이를 배워가던 순정한 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