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박사님] 꽃의 서사
[김민정 박사님] 꽃의 서사
by 김민정 박사님 2018.07.09
꽃의 하복부엔 범람의 기억이 있다
전력 질주 끝에 터지는 모세혈관
겹겹이 오므린 시간의, 그 오래고 먼 기억
피를 흘리면서 황급히 피었다가
피를 닦으면서 서둘러 지기도 하는
꽃이여, 뉠 곳도 없는 그대 전라의 무게여
꽃의 낯바닥엔 짓무른 자국이 있다
신음을 삼키면서 혀가 혀를 물고
쥐었다 놓는 순간에 바스러지는 꽃의 서사
- 박기섭의 「꽃의 서사」 전문
우리나라는 지금 장마 전선이 머물고 있는 장마철이다. 건기를 지나 우기에 속한 것이다. 가을에 피어야 할 코스모스가 너무 일찍 피더니 장맛비를 맞으며 가는 꽃줄기가 휘어지고 꽃들이 축축 처져 있다. 지난 5월에도 때아닌 폭우에 꽃들이 다 쓰러져 일부만 명맥을 유지하더니…. 처음 꽃을 피우는 코스모스를 보았을 때 참 신기했다. 처음에는 자라는 속도도, 크기도 비슷하더니 한 이틀 사이에 다른 것보다 키가 15~20센티 정도 커지더니 곧 꽃봉오리를 터트렸기 때문이다. 빨리 꽃을 피우기 위해 전력 질주하여 자란 모습을 보았던 것이고, 참으로 신통했었다.
“들숨과 날숨 사이/ 바람의 갈피에서// 내가 피어나듯/ 순간에 피는 저 꽃// 실바람/ 오랜 포옹에/ 한 몸으로 포개진다” - 졸시, 「꽃과 나」전문.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전력 질주한 모습, 그리고 모세혈관을 터트리듯 자신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보여주는 그 개화의 시간을 위한,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꽃봉오리 속에는 겹겹이 오므린 시간이 머물고 있었다. 꽃이 피면서 오므렸던 한 잎 한 잎을 펼쳐 보여주는 모습은 그대로 장관이었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라는 이호우 시인의 「개화」라는 작품이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꽃은 그렇게 피 흘리며 힘들게 피지만, 또 금방 지고 만다. 위에 인용한 시조도 그러한 꽃에 대한 안쓰러움을 둘째 수에서 보여준다. “피를 흘리면서 황급히 피었다가/ 피를 닦으면서 서둘러 지기도 하는/ 꽃이여, 뉠 곳도 없는 그대 전라의 무게여”
그러한 꽃들을 보면서 왜 여성을 생각하게 되는 걸까? 예쁜 여인들을 꽃에 비유하거나, 아니면 꽃에다 여인을 비유하기도 했던 많은 시, 신화, 설화들…. 낱말에 특별히 성별이 표시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꽃’이란 낱말에 떠오르는 것은 강한 힘을 나타내는 남성의 이미지보다 여리고 예쁜 여성이 먼저 떠오른다. 위의 시를 읽으면서 여성의 모습,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는 것은 그 때문일까? ‘꽃의 서사’는 꽃의 역사이지만, 한 여성의 역사 같기도 하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여성의 모습이, 꽃이 씨방에서 꽃씨를 키우는 모습으로 느껴진다. 보통 사람들은 꽃의 겉모습에만 연연하여 아름답게만 보지만,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 그 꽃은 또 얼마나 애타는 시간을 보냈을까. 꽃의 낯바닥에서 짓무른 자국까지 볼 수 있는, 신음을 삼키면서 혀가 혀를 물고 있는 모습까지 읽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꽃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위대한 여성인 어머니의 모습까지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전력 질주 끝에 터지는 모세혈관
겹겹이 오므린 시간의, 그 오래고 먼 기억
피를 흘리면서 황급히 피었다가
피를 닦으면서 서둘러 지기도 하는
꽃이여, 뉠 곳도 없는 그대 전라의 무게여
꽃의 낯바닥엔 짓무른 자국이 있다
신음을 삼키면서 혀가 혀를 물고
쥐었다 놓는 순간에 바스러지는 꽃의 서사
- 박기섭의 「꽃의 서사」 전문
우리나라는 지금 장마 전선이 머물고 있는 장마철이다. 건기를 지나 우기에 속한 것이다. 가을에 피어야 할 코스모스가 너무 일찍 피더니 장맛비를 맞으며 가는 꽃줄기가 휘어지고 꽃들이 축축 처져 있다. 지난 5월에도 때아닌 폭우에 꽃들이 다 쓰러져 일부만 명맥을 유지하더니…. 처음 꽃을 피우는 코스모스를 보았을 때 참 신기했다. 처음에는 자라는 속도도, 크기도 비슷하더니 한 이틀 사이에 다른 것보다 키가 15~20센티 정도 커지더니 곧 꽃봉오리를 터트렸기 때문이다. 빨리 꽃을 피우기 위해 전력 질주하여 자란 모습을 보았던 것이고, 참으로 신통했었다.
“들숨과 날숨 사이/ 바람의 갈피에서// 내가 피어나듯/ 순간에 피는 저 꽃// 실바람/ 오랜 포옹에/ 한 몸으로 포개진다” - 졸시, 「꽃과 나」전문.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전력 질주한 모습, 그리고 모세혈관을 터트리듯 자신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보여주는 그 개화의 시간을 위한,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꽃봉오리 속에는 겹겹이 오므린 시간이 머물고 있었다. 꽃이 피면서 오므렸던 한 잎 한 잎을 펼쳐 보여주는 모습은 그대로 장관이었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라는 이호우 시인의 「개화」라는 작품이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꽃은 그렇게 피 흘리며 힘들게 피지만, 또 금방 지고 만다. 위에 인용한 시조도 그러한 꽃에 대한 안쓰러움을 둘째 수에서 보여준다. “피를 흘리면서 황급히 피었다가/ 피를 닦으면서 서둘러 지기도 하는/ 꽃이여, 뉠 곳도 없는 그대 전라의 무게여”
그러한 꽃들을 보면서 왜 여성을 생각하게 되는 걸까? 예쁜 여인들을 꽃에 비유하거나, 아니면 꽃에다 여인을 비유하기도 했던 많은 시, 신화, 설화들…. 낱말에 특별히 성별이 표시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꽃’이란 낱말에 떠오르는 것은 강한 힘을 나타내는 남성의 이미지보다 여리고 예쁜 여성이 먼저 떠오른다. 위의 시를 읽으면서 여성의 모습,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는 것은 그 때문일까? ‘꽃의 서사’는 꽃의 역사이지만, 한 여성의 역사 같기도 하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여성의 모습이, 꽃이 씨방에서 꽃씨를 키우는 모습으로 느껴진다. 보통 사람들은 꽃의 겉모습에만 연연하여 아름답게만 보지만,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 그 꽃은 또 얼마나 애타는 시간을 보냈을까. 꽃의 낯바닥에서 짓무른 자국까지 볼 수 있는, 신음을 삼키면서 혀가 혀를 물고 있는 모습까지 읽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꽃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위대한 여성인 어머니의 모습까지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