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스님] 어느 왕후장상인들 병고를 피해가랴
[정운 스님] 어느 왕후장상인들 병고를 피해가랴
by 정운 스님 2018.07.17
며칠 전 병원을 다녀왔다. 작년 겨울, 예상치 못했던 병이 생겨 6개월 만에 재차 검진을 한 것이다. X-레이 촬영하고, 시티 촬영도 하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검진을 하다 보니, 수여시간을 병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환자들이 참 많다. 엑스레이 찍는 병동 앞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했다. 침대에 누워 오는 사람 중에는 젊은 아가씨, 할머니, 고등학생, 아기 등 남녀노소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휠체어에 앉은 환자가 장사진을 이루었다. 안타까운 환자는 의식이 없어 침대에 끌려다니는 이들이었고, 1~2살 아기 환자는 엄마에게 매달려 칭얼대자 젊은 엄마는 아기를 달래느라 진땀을 뺀다.
병원이 환자로 가득한 것은 당연하지만, 수많은 병들로 고통받는 환자가 있음을 병원에 가서 새삼 느낀다. 불교에서는 인간 삶의 고苦를 생로병사라고 한다. 석가모니부처님도 한 나라의 왕자였지만, 생로병사를 해결코자 출가했다. 생로병사, 어느 누가 이를 피해갈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모든 존재는 생로병사 앞에서는 평등하다. 태어남이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 아기가 산모의 자궁을 빠져나올 때, 고통스럽게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늙음과 죽음도 물론 고통스러운 것들이지만, 자연의 이치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은 병고이다. 자신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고 싶지만 자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은 찾아오는 법이다. 문제는 그 환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가족들의 고뇌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병고가 무섭다는 것이다.
우연히 아침, TV에서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시골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딸의 이야기였다. 그 딸도 50대 후반이었다. 딸의 인터뷰인데, 대략 내용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병명을 진단받고, 가족들은 병원에 모시자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어요. 완전히 기억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생활에 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저는 어머니 치매를 통해 ‘장애의 큰 산이 하나 생겼구나.’ 그래도 그 큰 산위에 희망의 공간이 있을 것이다. 엄마가 이만큼이어서 감사하다. 엄마는 나의 힘입니다.”
어떤 병이든 환자와 가족에게 가장 큰 장애요, 고이다. 그런데 장애라고 생각하고 절망하며 한탄할 수만은 없다. 앞의 치매 걸린 딸의 인터뷰도 있지만, 그 장애를 기회로 삼아보는 일이다. <보왕삼매론>에 이런 내용이 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쉬우니,
그래서 성인은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병고를 양약으로 삼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스스로의 연민심에 빠져 슬퍼한다면 병고의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다.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생은 병고만이 아닌 극복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병에 걸리지 않으면 분명 다른 고통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병고를 절망스럽게 생각하고 한탄한다면 마음까지 더 힘들게 된다. 몸은 병들어도 마음만큼은 병들지 말자. 병고를 ‘삶을 성숙시키는 밑거름’이라고 여기고 마음만큼은 희망을 갖자.
병원이 환자로 가득한 것은 당연하지만, 수많은 병들로 고통받는 환자가 있음을 병원에 가서 새삼 느낀다. 불교에서는 인간 삶의 고苦를 생로병사라고 한다. 석가모니부처님도 한 나라의 왕자였지만, 생로병사를 해결코자 출가했다. 생로병사, 어느 누가 이를 피해갈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모든 존재는 생로병사 앞에서는 평등하다. 태어남이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 아기가 산모의 자궁을 빠져나올 때, 고통스럽게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늙음과 죽음도 물론 고통스러운 것들이지만, 자연의 이치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은 병고이다. 자신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고 싶지만 자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은 찾아오는 법이다. 문제는 그 환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가족들의 고뇌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병고가 무섭다는 것이다.
우연히 아침, TV에서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시골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딸의 이야기였다. 그 딸도 50대 후반이었다. 딸의 인터뷰인데, 대략 내용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병명을 진단받고, 가족들은 병원에 모시자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어요. 완전히 기억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생활에 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저는 어머니 치매를 통해 ‘장애의 큰 산이 하나 생겼구나.’ 그래도 그 큰 산위에 희망의 공간이 있을 것이다. 엄마가 이만큼이어서 감사하다. 엄마는 나의 힘입니다.”
어떤 병이든 환자와 가족에게 가장 큰 장애요, 고이다. 그런데 장애라고 생각하고 절망하며 한탄할 수만은 없다. 앞의 치매 걸린 딸의 인터뷰도 있지만, 그 장애를 기회로 삼아보는 일이다. <보왕삼매론>에 이런 내용이 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쉬우니,
그래서 성인은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병고를 양약으로 삼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스스로의 연민심에 빠져 슬퍼한다면 병고의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다.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생은 병고만이 아닌 극복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병에 걸리지 않으면 분명 다른 고통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병고를 절망스럽게 생각하고 한탄한다면 마음까지 더 힘들게 된다. 몸은 병들어도 마음만큼은 병들지 말자. 병고를 ‘삶을 성숙시키는 밑거름’이라고 여기고 마음만큼은 희망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