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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모질고 질긴 생명의 가치

[이규섭 시인님] 모질고 질긴 생명의 가치

by 이규섭 시인님 2018.07.20

가슴 뭉클한 빅뉴스의 여운은 길다. 태국 동굴소년들의 구출 소식은 칙칙하고 짜증나는 뉴스들을 한방에 날린 감동의 착한뉴스다. 아이들은 깊이도 모르는 동굴에 갇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주린 배를 움켜잡고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동굴에 고립됐던 유소년 축구팀 선수 12명과 코치 1명이 17일 만에 전원 구조된 건 기적의 생존 드라마다. 그들을 버티게 했던 힘은 평소 비지땀 흘리며 함께 뒹굴었던 스포츠 정신과 동료애다.
그 중심에는 스물다섯 살 에까뽄 코치의 희생정신과 리더십이 절대적이었다. 각자 가지고 있던 과자 등을 나눠먹게 하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몸 상태가 가장 안 좋은 것은 그였고, 가장 늦게 빠져나온 것도 그였다. 목이 말라도 배탈이 날까 봐 고인 물은 먹지 못하게 했고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만 먹게 했다. 승려 출신인 그는 명상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유도했고 반드시 살아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잃지 않게 다독거렸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본분을 잃지 않은 참 아름다운 청년이다.
태국으로 달려와 13명 모두를 빛의 세상으로 데리고 나온 전 세계 동굴 전문가와 자원봉사자들은 구조 영웅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호주의 마취과 의사 겸 잠수 전문가의 활약은 돋보였다. 동굴에 들어가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아이들의 구조순서를 정한 것도 그였다. 자원하여 구조 활동을 벌이다 숨진 태국 네이버실 전직 대원의 죽음은 안타깝다.
구조 작업이 끝난 뒤 네이버실이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에 올린 카툰 한 컷은 한편의 동화 같다. 새끼 멧돼지(소년들)와 형 멧돼지(코치)가 개구리(전 세계에서 온 잠수 전문가)와 물범(네이버실)의 호위를 받으며 구불구불한 동굴을 헤쳐 나가는 그림은 조렸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영국 명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드는 동굴소년 12명과 코치를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 초대했다. 하지만 코치와 선수 2명은 무국적 난민으로 초대에 응하기 어려운 처지다. 그들은 프로축구 선수가 될 수도 없다. 국적을 취득하여 영국도 다녀오고 축구 선수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기적의 생환 기록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1967년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 매몰사고로 125m 지하 갱 안에 갇혔던 37세 광부는 15일 9시간 만에 구출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천장으로 흘러내리는 지하수를 헬멧으로 받아 마시고 갱목 껍질을 빨아먹으며 연명했다. 이보다 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인간 승리는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매몰된 19세 여성으로 15일 17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377시간을 버틴 건 기적이다. 광부 보다 8시간을 더 버틴 국내 최장 기록이다.
모질고 질긴 게 사람 목숨이다. 이 땅의 부모들은 질곡의 세월을 모질게 버티며 목숨처럼 소중하게 자식들을 키웠다. 귀중한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방어능력 없는 태아의 생명을 지우려는, 인간 존엄 가치의 파괴행위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