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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꿰맨 바가지와 플라스틱

[한희철 목사님] 꿰맨 바가지와 플라스틱

by 한희철 목사님 2018.08.08

동네 어른들과 함께 흙과 땀으로 지은 집이 한 채 있습니다. 작고 허술한 집이지요. 동네에 구들을 뜯어내는 집이 있으면 구들을 가져오고, 누구네 허무는 집이 있으면 문짝과 창틀을 얻어오고, 그런 것들을 하나씩 모아 두었다가 지은 집이니 새 집을 지었다 해도 실은 헌 집을 지은 셈입니다.
마루에 깔아놓은 마룻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세평쯤 되는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무대의 막이 오르듯 서쪽으로 기우는 하루해가 마지막 남은 볕을 비출 때나, 어둠이 깔리며 둥근 달이 둥실 떠오를 때가 특히 절경인 앞산을 가장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입니다. 마루에 깐 송판은 동네 초등학교에서 온 것입니다. 낡은 교실을 리모델링을 하며 나온 마루의 일부를 얻어와 재활용을 한 것이니까요.
허름함 중에서도 그 중 압권은 마루에 걸린 전등의 갓이지 싶습니다. 백열전구의 갓이 특이합니다. 박을 삶은 뒤 반으로 켜서 만든 바가지가 전구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바가지도 성한 바가지가 아닙니다. 마치 수술 부위를 실로 꿰맨 것처럼 바가지의 금이 간 부분을 따라 꿰맨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지금이야 전등이 흔해 얼마든지 다른 전등을 매달아도 되고, 바가지로 치자면 싸고 흔한 플라스틱 바가지가 많지만 굳이 그 바가지를 썼던 것은 금이 간 바가지를 꿰맨 분이 돌아가신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또 한 가지 이유도 있습니다.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자연에서, 버리는 것 중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충당할 수가 있다는 것을 함께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제품은 어느새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이 사용됩니다. 편리함과 유용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플라스틱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랜 시간 땅속에서 썩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최근에는 플라스틱 제품이 바다로 흘러간 후 분해되어 생성되는 미세 플라스틱이 새로운 환경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은 플랑크톤과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먹이로 오인하고 섭취하는 해양 생물이 많습니다. 중간 크기의 비닐봉투 하나가 175만 개의 조각으로 분해가 된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지요. 결국 미세 플라스틱은 먹이 사슬을 따라 해산물을 섭취하는 사람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고 맙니다.
얼마 전에는 사진 한 장이 우리에게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힌 채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버린 플라스틱이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는지를 상징처럼 보여주는 사진이었습니다.
편하게 사용하다 쉽게 버리는 수많은 플라스틱과 허름한 집 마루에 걸린 꼼꼼히 꿰맨 전등갓,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지구의 앞날은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