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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달품박’ 한가위

[이규섭 시인님] ‘달품박’ 한가위

by 이규섭 시인님 2018.09.21

옥상 커다란 화분에 심은 조롱박이 영글어 탱탱하다. 올핸 처음으로 모종 대신 씨앗을 사다 심었다. 싹을 틔워보고 싶어서다. 조롱박 씨앗을 물에 하루 불렸다가 묻었다. 열흘이 지나도 싹이 나지 않는다. “너무 깊이 심었나” “불량 씨앗인가” 지레짐작했는데 며칠 더 지나니 초록 순이 흙을 헤치고 목을 내민다. 새싹은 경쾌한 봄의 환희다.
떡잎 위에 새순이 돋을 때 건실한 두 포기만 남기고 뽑아버렸다. 줄기가 휘감고 오를 섶과 끈을 얽어 놓았다. 잎이 무성해지면서 두 줄기가 경쟁하듯 조롱박을 매달더니 저절로 떨어지고 몇 개 남았다. 한 줄기에 실한 놈 한 개씩만 남기고 솎아냈다. 지독한 폭염에 매일 물을 주지 않으면 잎이 혀를 빼문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시달리면서도 박꽃을 피우는 게 기특하다. 어렸을 적 시골집 헛간 초가 이엉과 돌담에 핀 박꽃은 희고 탐스러웠다. 어둠이 저녁연기처럼 깔리면 하얀 미소 머금고 순박하게 피어나던 박꽃이 그립다. 박꽃을 보면 고향이 떠오른다. 시인 박순범은 박꽃을 ‘밤이면 달님을 찾아 피는 꽃’이라 노래했고, 달님과 몰래 ‘눈 정’을 걸어서 박 하나를 낳는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몇 해 전 조롱박을 만들어 거실 귀퉁이에 걸어두었다가 먼지가 쌓이고 볼품이 없어져 버렸다. 올해는 손자와 함께 박 공예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박은 성장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어린 열매 때는 솜털이 송송 돋은 청록색(靑綠色)이었다가 박덩이로 변하면서 연한 녹색(軟綠色)을 띈다. 탱글탱글 영글면 박하 분을 바른 듯 하얀 피부를 은은하게 드러낸다. 박의 일생을 마감하고 바가지로 거듭나면 노른빛을 띤 살림 도구가 된다.
박의 효용가치를 ‘농가월령가’는 두 가지로 노래한다. 첫째가 살림살이에 요긴하게 쓰이는 바가지로서의 효율성이다. ‘집 위에 굳은 박은 요긴한 기명(器皿)이라’고 했다. 플라스틱 바가지 등장 이후 박 바가지는 코미디 소품으로 위상이 추락했다. 또 한 가지는 호박고지나 가지고지처럼 덜 여물었을 때 박고지를 만들면 겨울철 귀한 반찬이 된다. ‘소채 과실 흔한 적에/ 저축을 생각하여/ 박 호박고지 켜고/ 외 가지 짜게 절여/ 겨울에 먹어 보소/ 귀물이 아니 될까’ 권장했다.
민족의 명절 추석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기록적인 폭염과 수확 철 물난리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추석 상차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명절의 의미도 갈수록 빛이 바랜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완행열차의 짐짝이 되어 고향을 찾아가던 풍경은 전설이 됐다. 환경이 바뀌고 사람들도 낯선 고향은 옛날의 고향은 아니다.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정지용의 시는 긴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시대의 석학 이어령 선생은 ‘박이야말로 한 해의 세월을 즐겁게 하는 천혜의 선물이다’고 했다. 한가위 달을 닮은 박덩이는 추석 무렵 자연이 준 선물이다. 모든 시름 훌훌 털어버리고, 모두가 달을 품은 박처럼 넉넉하고 박타령처럼 흥겨운 한가위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