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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빵을 사준 친구

[한희철 목사님] 빵을 사준 친구

by 한희철 목사님 2018.10.17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가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의 거창한 일화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소소한 삶에서 길어 올린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줄 때 더욱 그렇습니다. 한 후배를 통해 들은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내내 느꼈으니까요.
후배가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친구가 있었답니다. 키도 크고 운동도 뛰어나게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유명했던 건 키가 크기 때문도 아니었고, 운동을 잘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는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반 아이들이 겉으로는 친한 척 지내도, 아무도 그 친구를 달가워하지는 않았습니다.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친구가 교실에서 보이질 않았습니다. 종종 결석했던 친구라 선생님도 아이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록 그 친구는 학교에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연락을 받고 반 친구들에게 전해준 소식은 뜻밖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백혈병에 걸려서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몇몇 아이들은 다른 애들을 괴롭혀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속닥거렸습니다. 잘됐다고 대놓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의 마음보다 조금은 더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것일까요, 처음엔 그 친구를 미워하고 욕하던 친구들도 어느샌가 헌혈증을 모으면 도움이 된다는 말에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헌혈증을 꺼내 놓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험담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자기가 헌혈증 몇개를 기증했는지를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헌혈증을 전하기 위해 헌혈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을 괴롭혔던 그 아이를 위해서 아이들은 헌혈증을 모으고 모금을 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헌혈증과 기부금으로 친구의 치료를 도운 것은 물론입니다.
후배가 놀라운 일을 경험한 것은 한 학년을 올라가 3학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2학년으로 복학한 그 친구를 학교 매점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아이들을 괴롭히던 때와는 너무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괴롭힐 대상을 물색하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던 언행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웃으면서 후배에게 다가와 “고마워! 이 빵 내가 살게.”하고 말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지난해 자기랑 같은 학년 같은 반 친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빵을 뺏어 먹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빵을 사주는 친구가 된 것이었습니다.
어디 그것이 빵 하나뿐이겠습니까. 분명 그 친구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겠지요. 그를 변화시킨 것은 아이들의 비난이나 공격이나 무관심이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관심과 격려가 가져오는 변화를 오늘도 여전히 신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