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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사시나무와 역경

[강판권 교수님] 사시나무와 역경

by 강판권 교수님 2019.01.21

버드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사시나무는 주로 산 중턱에서 자란다. 사시나무는 바람이 불면 소리를 낸다. 그래서 사시나무를 ‘산에서 소리 내는 나무‘ 즉 ’산명(山鳴)나무’라 부른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시나무 떨듯’은 두려움에 떨 때 사용한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시나무 떨 듯 두려움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많다. 한국사회는 1990년대 후반 외환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사시나무의 줄기는 멀리서 보면 하얀색에 가깝다. 그래서 사시나무를 백양(白楊)이라 부른다. 백양을 의미하는 포플러는 수많은 버드나무의 상징이다. 곧게 자라는 사시나무의 군락은 자작나무처럼 아주 아름답다. 특히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은 메마른 마음을 순식간에 흔들어놓을 만큼 매혹적이다. 이처럼 사시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은 흔들리는 부드러움 때문이다. 사시나무가 거친 세월에도 거뜬히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도 부드러움 덕분이다.
누구나 역경을 겪는다. 역경을 극복하는 방법은 많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드러운 자세다. 중국 고전 중 하나인 『역경(易經)』은 변화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경전이다. 64개의 괘를 통해 우주의 변화를 설명하는 『역경』은 인간이 겪고 있는 역경을 극복할 수 있은 방법을 담고 있다. 역경의 ‘역’은 ‘쉽다’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 바꾼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지만, 인간은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사람마다 겪는 역경은 다양하지만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변하지 않는 친구들의 생각과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친구들도 나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나 변하거나 변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역경을 겪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게 문제다. 역경을 겪지 않은 상태에서는 굳이 변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역경을 겪으면서도 변하지 않는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시나무를 비롯해서 나무들이 인간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있는 것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전환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태도를 심각하게 성찰해야만 한다. 전환기는 간단한 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환기는 틀을 바꾸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환기에는 혁명적 사고가 절실하다. 진정한 혁명은 자신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자신이 갖고 있던 사고를 완전히 바꾸는 과정이 혁명이다. 밖의 요구에 따라 바꾼다면 이미 때는 늦었다. 한국사회는 개인부터 사회전반에 걸쳐 혁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 전체 분위기는 혁명과는 거의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서로 탓만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회 지도자들 간에 난무하는 비방, 많은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벌이는 비난은 역경을 극복하기는커녕 심화시킬 뿐이다.
사시나무는 미풍에도 몸을 흔들면서 시련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다. 사시나무의 흔들리는 몸짓은 결코 연약한 것이 아니라 강한 생존법칙이다. 그래서 길을 가다 문득 만나는 사시나무는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