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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마음에 남은 커피

[한희철 목사님] 마음에 남은 커피

by 한희철 목사님 2019.02.27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커피에 대한 관심은 변함이 없지 싶습니다. 얼마 전 서울 근교에서 지인들을 만나 점심을 먹고는 인근에 있는 찻집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자리를 잡고 차를 주문하던 우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커피 전문점이었는데, 커피 한 잔 값이 생각 이상으로 비쌌기 때문이었습니다. 맛있게 먹은 점심값보다도 커피 한 잔 값이 비쌌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값이 이래도 사람들이 찾아오느냐고요. 주인의 대답엔 자신이 있었습니다. 커피를 아는 사람들은 찾아온다고 대답을 했으니까요.
아침에 사무실로 나와 커피를 마시며 생각하니 문득 생각나는 커피가 있습니다. 오래전의 일, 그런데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마음에 남아 있는 커피라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오래전 강원도 외진 마을 단강에서 살 때 있었던 일입니다.
병풍처럼 둘러선 산 아래로 길이 끝나는 윗작실 한쪽 켠 허름한 토담집, 켜켜 장작이 쌓인 치화 씨네 집에서 예배를 드리던 날이었습니다. 노총각 치화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둘이서 살고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치화 씨 어머니는 연기 가득한 부엌에서 연신 기침을 하며 불을 때고 있었습니다. 고만고만한 살림살이가 방바닥에 놓인 방을 깨끗이 치워놓고 기다리던 치화 씨가 미닫이문을 열며 우리를 맞았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예배를 드리고 일어서려는데, 치화 씨가 우리를 붙잡았습니다. 커피 한 잔을 하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살림살이를 잘 아는지라 슬며시 일어서려던 참이었습니다. 치화 씨는 얼른 커피믹스를 꺼내들었습니다. 며칠 전에 일부러 부론장에 나가 사온 커피라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준비를 했던 것이지요.
얼른 밖으로 나가 바가지에 물을 떠온 치화 씨가 전기밥통에 물을 붓더니 코드를 꽂았습니다. 전기밥통에 끓이는 물, 언제 끓는지를 알 수가 없어 여러 번 뚜껑을 열어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물은 한참 만에 끓었습니다.
이번엔 커피를 탈 잔을 가져왔는데 유리컵 세 개에 사기로 만든 종지 한 개였습니다. 끓인 물을 조심스럽게 따르며 치화 씨는 정성껏 커피를 탔습니다. 그런 치화 씨의 모습은 세상에 둘도 없는 바리스타였습니다.
나는 일부러 사기 종지에 탄 커피를 택했습니다. 밥을 짓는 전기밥통에 물을 끓여 사기 종지에 타서 마시는 커피, 모양이야 어색할지 몰라도 세상에 누가 그런 커피를 마시겠나 싶었습니다. 그 모든 것에 담긴 치화 씨 정성을 아는지라 아껴 마시고 싶을 만큼 커피는 각별했습니다. 설산(雪山) 꼭대기에서 눈을 녹여 마시는 듯 드문 커피였습니다.
그새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치화 씨는 여전히 그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음에 단강을 찾을 때는 치화 씨를 위해 커피를 사가지고 가야지 싶습니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커피에 대한 인사를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