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어떤 행렬
[한희철 목사님] 어떤 행렬
by 한희철 목사님 2019.03.20
1969년 신춘문예 당선작이었으니 50년 전에 쓴 작품인 셈이네요. 목사이자 소설가인 백도기의 ‘어떤 행렬’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교단본부의 추천으로 첫 목회지인 농촌교회를 답사 삼아 다녀오는 젊은 목사 이야기입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날씨 속 첫 목회지를 둘러보기 위해 찾아온 목사를 맞이한 것은 전기나 전화는 물론 방바닥에 최소한의 온기조차 지필 능력이 없는 퇴락한 예배당과 사택이었습니다. 그가 마주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어서 일흔이 넘어서까지 교회를 지키고 있는 노목사와 봉두난발을 한 채 괴성을 질러대는 마흔 가량의 정신 이상이 된 아들도 만나게 됩니다.
아들이 정신이상이 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사변이 나던 해, 그 교회가 접수되어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사용되기 전인데 교회를 내놓지 않으려 든다고 목사와 아들이 붙잡혀서 심한 매를 맞으며 고문을 당한 후유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목사의 아들을 두고 사람들은 마귀에게 걸렸다고 했고, 결국은 병들고 가난하고 나이 많은 이들만 남은 채 많은 교인들이 목사를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노목사와 성도들의 요청에도 젊은 목사는 그토록 열악한 곳에 자신을 내던지려고 한 교단본부의 책임자들에게 분노하며 그곳을 외면하기로 마음을 정리합니다. 다음날 도망치듯 서둘러 서울로 돌아가게 되는데 배웅 나온 노목사와 함께 버스를 기다릴 때 누군가가 버스와 부딪쳐 죽게 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놀라 달려가 보니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이는 노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둘러선 이들을 헤치고 들어간 노목사는 참혹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안간힘을 쓰며 흘러내리는 아들의 몸뚱이를 추슬러서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할 때, 노목사의 어깨 위에 상반신을 걸친 채 두 팔을 양쪽으로 쫙 벌려 늘어뜨리고 있는 아들의 시체는 젊은 목사의 눈에 끔찍할 만큼 충격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젊은 목사는 자신도 모르게 숨 가쁘게 중얼거립니다. “십자가다! 저건 십자가다!”
아들을 멘 채로 미끄러져 쓰러진 노목사에게 젊은 목사는 다가가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목사님.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목사님께는 너무나 벅찹니다. 저는,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제게 맡겨 주세요!”
누구에게도 아들을 넘기지 않던 노목사는 젊은 목사를 가만히 바라보았고 마침내 그에게 아들을 넘겨줍니다. “고맙소!”라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두려움 없이 피투성이 사내를 들쳐 멘 젊은 목사는 자기가 결코 그곳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과, 열악하여 외면하려고 했던 그곳이야말로 목초원지(牧草原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십자가를 생각하는 사순절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십자가를 질 때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선 자리는 외면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자리라는 것을 말이지요.
을씨년스러운 겨울 날씨 속 첫 목회지를 둘러보기 위해 찾아온 목사를 맞이한 것은 전기나 전화는 물론 방바닥에 최소한의 온기조차 지필 능력이 없는 퇴락한 예배당과 사택이었습니다. 그가 마주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어서 일흔이 넘어서까지 교회를 지키고 있는 노목사와 봉두난발을 한 채 괴성을 질러대는 마흔 가량의 정신 이상이 된 아들도 만나게 됩니다.
아들이 정신이상이 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사변이 나던 해, 그 교회가 접수되어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사용되기 전인데 교회를 내놓지 않으려 든다고 목사와 아들이 붙잡혀서 심한 매를 맞으며 고문을 당한 후유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목사의 아들을 두고 사람들은 마귀에게 걸렸다고 했고, 결국은 병들고 가난하고 나이 많은 이들만 남은 채 많은 교인들이 목사를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노목사와 성도들의 요청에도 젊은 목사는 그토록 열악한 곳에 자신을 내던지려고 한 교단본부의 책임자들에게 분노하며 그곳을 외면하기로 마음을 정리합니다. 다음날 도망치듯 서둘러 서울로 돌아가게 되는데 배웅 나온 노목사와 함께 버스를 기다릴 때 누군가가 버스와 부딪쳐 죽게 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놀라 달려가 보니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이는 노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둘러선 이들을 헤치고 들어간 노목사는 참혹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안간힘을 쓰며 흘러내리는 아들의 몸뚱이를 추슬러서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할 때, 노목사의 어깨 위에 상반신을 걸친 채 두 팔을 양쪽으로 쫙 벌려 늘어뜨리고 있는 아들의 시체는 젊은 목사의 눈에 끔찍할 만큼 충격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젊은 목사는 자신도 모르게 숨 가쁘게 중얼거립니다. “십자가다! 저건 십자가다!”
아들을 멘 채로 미끄러져 쓰러진 노목사에게 젊은 목사는 다가가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목사님.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목사님께는 너무나 벅찹니다. 저는,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제게 맡겨 주세요!”
누구에게도 아들을 넘기지 않던 노목사는 젊은 목사를 가만히 바라보았고 마침내 그에게 아들을 넘겨줍니다. “고맙소!”라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두려움 없이 피투성이 사내를 들쳐 멘 젊은 목사는 자기가 결코 그곳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과, 열악하여 외면하려고 했던 그곳이야말로 목초원지(牧草原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십자가를 생각하는 사순절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십자가를 질 때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선 자리는 외면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자리라는 것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