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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오래 가는 인연

[한희철 목사님] 오래 가는 인연

by 한희철 목사님 2019.04.17

예전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지요. 그만큼 모든 만남을 소중히 여겼던 것이지요. 어떤 만남도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고요. 하지만 요즘의 세태를 보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옛말, 지금은 옷깃만 스치는 인연 속에 사는 것 같습니다. ‘스쳐도’와 ‘스치는’이 차이가 아뜩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옷깃만 스치는 인연 속에 살아간다 하여도 우리의 삶 속에는 오래 가는 인연이 여전히 있게 마련입니다. 우연처럼 만났지만 오래 가는 인연이 왜 없겠습니까. 드물어진 만큼 소중해진 셈이지요.
이규성 군과 관련된 일이 그렇겠다 싶습니다. 30여 년 전 강원도의 작고 외진 마을 단강에 살 때 규성 군을 만났습니다. 막 세상에 태어나는 한 아기를 말이지요. 그는 마침 제 둘째와 같은 해에 태어나서 크지 않은 동네에서 형제처럼 지냈지요. 이 집에서 밥을 먹고 저 집에서 잠을 자고 하는 식으로 자랐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이규성 군이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습니다. 어느새 청년이 된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주례자를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양가에서 정한 날짜가 일요일, 주례 부탁을 제게는 엄두를 못 내고 다른 분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생각을 하다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계신 한 지인을 소개했습니다. 판사와 변호사를 역임한, 마음으로 존경하는 분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는 흔쾌하게 승낙을 했는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신랑과 신부를 전혀 모르는 채 주례를 할 수는 없으니, 언제라도 두 사람을 만나 먼저 이야기를 나누는 조건이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싶어 의견을 전했고, 두 사람은 따로 시간을 내어 주례자를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예배 신랑 신부가 주례자를 찾아 인사를 나누던 날, 주례를 맡기로 한 지인이 전화를 했습니다. 성격이 더없이 차분한 분인데,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평소와는 다른 활달한 목소리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신랑 신부를 만나기로 한 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사진을 찾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오래전 지인의 딸이 단강마을을 찾아와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는 봉사활동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갖기 힘든 시간이었지요.
모든 수업을 마치던 날 함께 했던 시간을 기념하며 단강초등학교를 대표하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이 생각나 사진을 챙겨 나간 것이었는데, 사진을 본 예비 신랑이 깜짝 놀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뵙지 싶은 주례자가 가지고 나온 사진 속에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었으니 말이지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즐거운 인연이다 싶었습니다. 그런 인연 못지않은 인연으로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서 두 사람이 만났으니 이루는 가정이 복되기를 마음을 다해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