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 대표님] 종(縱)의 삶, 횡(橫)의 삶
[김재은 대표님] 종(縱)의 삶, 횡(橫)의 삶
by 김재은 대표님 2019.04.18
몇 해 전부터 매년 한여름 8월이 되면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다. 백무동에서 오르기도 하고 한신계곡이나 청학동, 때로는 대원사 쪽에서 오르기도 한다. 세석이나 장터목에서 1박을 하기도 한다. 내려올 때는 대부분 법계사를 거쳐 산청 중산리로 내려온다.
1박을 하기 때문에 배낭의 무게가 제법이다. 경사는 가파르고 배낭은 무거운 데다 무더운 여름인지라 엄청나게 땀을 흘린다. 아니 땀이 그대로 내가 된다. 그래도 지리산에 다녀오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힘이 난다. 만만치 않은 세파를 헤쳐나갈 힘을 얻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올해도 8월이 되면 나는 지리산 천왕봉에 오를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던 그 해 봄부터 우연히 시작한 걷기 모임이 있다.
오르고야 마는 ‘등정’의 산길이 아닌 작은 높낮이가 있는 둘레길이나 때로는 들길, 또는 마을길이다. 누구나 쉽게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발걸음 모임이자 행복을 발견하는 모임이다.
지금까지 매월 한 번씩, 70여 회 넘게 진행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땅끝 해남 달마고도로 다녀왔다. 달마산 정상에 오르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은 채 18km의 능선길을 40여 명의 행복쟁이들이 걷고 또 걸었다. 고요한 숲을 걷기도 하고 시야가 확 트인 진달래밭, 달마고도의 특별한 모습이기도 한 돌이 많이 깔린 비탈인 너덜겅을 걷기도 했다.
어쨌거나 곧장 산에 올랐다면 만나지 못했을 다양한 자연과 산의 속살을 그대로 만날 수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며 떠오른 것이 바로 종(縱)의 삶, 횡(橫)의 삶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산을 올라야만 하는, 앞만 보고 내달리는 종(縱)의 삶이었다면 달마고도를 걷는 삶은 여기저기 해찰도 하고 기웃거려 볼 수 있는 느린 발걸음, 바로 횡(橫)의 삶이었다.
종의 삶이 성공지향의 정복적인 삶, 대박의 삶이라면 횡의 삶은 작은 즐거움이 있는 행복지향의 삶, 소박한 삶이 아닐까. 물론 산에 오르는 행복도 결코 작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종의 삶이든 횡의 삶이든 인생 곡절이 없을 리야 없겠지만 이제는 다른 길, 다른 선택을 해 보면 좋겠다.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횡의 삶’에 적극적으로 나서보길 제안하고 싶은 것이다.
종의 삶이 열정이라면 횡의 삶은 꾸준함이다. 물론 열정을 꾸준하게 가져가면 좋겠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에 열정보다는 꾸준함에 방점을 찍고 뭔가를 해 보는 것이다.
여기에 복병이 하나 있다. 꾸준함을 바탕으로 한 횡의 삶은 때론 단조롭고 지겨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애정을 가지고 오감의 촉수를 세우면 아기자기한 재미가 샘솟는다.
무료한 일상의 삶 속에 잔잔한 행복이 숨어있다는 ‘소확행’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러니 때로는 힘에 부치는 종의 삶보다는 내 바로 곁에 있는 횡의 삶에 눈길을 줘보면 어떨까.
2,500여 년 전 공자께서 말씀하신 한 구절이 다시 살아난다.
여불가구(如不可求), 종오소호(從吾所好)
구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오르고 싶은데 못 오른다 하여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고맙게도 달마고도의 아름다운 추억에 ‘횡(橫)의 삶’이라는 보너스까지 얻었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을 내려갈 때가 아니라 모퉁이 길을 걸으며 보았다.
1박을 하기 때문에 배낭의 무게가 제법이다. 경사는 가파르고 배낭은 무거운 데다 무더운 여름인지라 엄청나게 땀을 흘린다. 아니 땀이 그대로 내가 된다. 그래도 지리산에 다녀오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힘이 난다. 만만치 않은 세파를 헤쳐나갈 힘을 얻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올해도 8월이 되면 나는 지리산 천왕봉에 오를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던 그 해 봄부터 우연히 시작한 걷기 모임이 있다.
오르고야 마는 ‘등정’의 산길이 아닌 작은 높낮이가 있는 둘레길이나 때로는 들길, 또는 마을길이다. 누구나 쉽게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발걸음 모임이자 행복을 발견하는 모임이다.
지금까지 매월 한 번씩, 70여 회 넘게 진행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땅끝 해남 달마고도로 다녀왔다. 달마산 정상에 오르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은 채 18km의 능선길을 40여 명의 행복쟁이들이 걷고 또 걸었다. 고요한 숲을 걷기도 하고 시야가 확 트인 진달래밭, 달마고도의 특별한 모습이기도 한 돌이 많이 깔린 비탈인 너덜겅을 걷기도 했다.
어쨌거나 곧장 산에 올랐다면 만나지 못했을 다양한 자연과 산의 속살을 그대로 만날 수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며 떠오른 것이 바로 종(縱)의 삶, 횡(橫)의 삶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산을 올라야만 하는, 앞만 보고 내달리는 종(縱)의 삶이었다면 달마고도를 걷는 삶은 여기저기 해찰도 하고 기웃거려 볼 수 있는 느린 발걸음, 바로 횡(橫)의 삶이었다.
종의 삶이 성공지향의 정복적인 삶, 대박의 삶이라면 횡의 삶은 작은 즐거움이 있는 행복지향의 삶, 소박한 삶이 아닐까. 물론 산에 오르는 행복도 결코 작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종의 삶이든 횡의 삶이든 인생 곡절이 없을 리야 없겠지만 이제는 다른 길, 다른 선택을 해 보면 좋겠다.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횡의 삶’에 적극적으로 나서보길 제안하고 싶은 것이다.
종의 삶이 열정이라면 횡의 삶은 꾸준함이다. 물론 열정을 꾸준하게 가져가면 좋겠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에 열정보다는 꾸준함에 방점을 찍고 뭔가를 해 보는 것이다.
여기에 복병이 하나 있다. 꾸준함을 바탕으로 한 횡의 삶은 때론 단조롭고 지겨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애정을 가지고 오감의 촉수를 세우면 아기자기한 재미가 샘솟는다.
무료한 일상의 삶 속에 잔잔한 행복이 숨어있다는 ‘소확행’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러니 때로는 힘에 부치는 종의 삶보다는 내 바로 곁에 있는 횡의 삶에 눈길을 줘보면 어떨까.
2,500여 년 전 공자께서 말씀하신 한 구절이 다시 살아난다.
여불가구(如不可求), 종오소호(從吾所好)
구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오르고 싶은데 못 오른다 하여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고맙게도 달마고도의 아름다운 추억에 ‘횡(橫)의 삶’이라는 보너스까지 얻었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을 내려갈 때가 아니라 모퉁이 길을 걸으며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