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옆집 동중이 아저씨
[권영상 작가님] 옆집 동중이 아저씨
by 권영상 작가님 2019.05.09
텃밭에 토마토 모종을 하고 있을 때다.
옆집 동중이 아저씨가 시금치 씨앗 봉지를 들고 왔다.
“여자 친구랑 읍내에 나갔다가 사 왔네요. 혹 자리 있으면 심으시라고.” 점심 전에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오는 걸 봤다. 뒷자리엔 그가 말하는 여자 친구가 타고 있었다. 바깥출입을 할 때마다 그는 늘 여자 친구를 태우고 나간다.
나는 얼른 시금치 씨앗 봉지를 받았다. 씨앗이 상당히 남아있다. 먹을 만치 몇 줄 심고 말았단다. 저번엔 쓰다 남은 석회비료 반 포대를 마당에 던져놓고 갔다.
나는 하던 일을 놓고 안에 들어가 아내가 만들어 넣어준 쑥떡을 꺼내고, 바나나 세 개를 잘라 동중이 아저씨 손에 들려 정중히 보냈다.
동중이 아저씨가 옆집으로 이사 온 건 지난 가을이다. 본디 옆집엔 경희 아빠 내외가 살았는데, 그리 멀지 않은 저수지 근방 문중 땅으로 이사를 가고, 동중이 아저씨가 왔다. 인천이 집인데 친구들과 어울려 술만 마시고 살면 뭐할까 싶어 시골에 살러 왔단다. 그는 놀랍게도 함께 온 여자를 ‘여자 친구’라 불렀다.
그는 여자 친구를 사랑한다. 요 산 너머에 포도밭을 얻어 그걸 소일삼아 사는데 아침이면 오토바이에 여자 친구를 태우고 가고, 저녁이면 돌아와 알콩달콩 산다.
울타리 없이 배수로를 경계로 살다 보니 가끔 그 여자 친구라는 분과 마주친다. 60대. 깔끔한 도시여자다. 서울서 내려오는 길에 반찬거리도 구할 겸 백암 마트에 들르면 나는 그 댁 과일도 가끔 챙겨다 드릴 때가 있다. 일부러 읍내에 나가지 않으면 사과 한 쪽, 라면 하나도 살 곳 없는 곳이 시골이다.
그걸 가끔 건네 드려 그런지 뭐라도 생기면 내게 꼭 보 갚음을 한다.
“제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게 음악 듣는 거예요.” 동중이 아저씨가 여자 친구에 대해 말하면 여자 친구분이 그런다. 음악은 무슨! 그냥 우리 가요 듣는 게 좋아 가끔 듣는 거지.
“가사가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 게 좋아 듣는 편이에요.”
그분의 취미를 나도 안다.
밭에 모종을 하거나, 풀을 뽑거나, 고추를 따고, 거름을 펼 때면 그 댁 창 너머로 CD 노래가 들려오곤 한다.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미지의 세계’, ‘꽃밭에서’ 같은 노래는 지금도 기억난다. 그런 노래는 한번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하루종일 흥얼거리게 되어 좋다.
시골살이의 좋은 점은 고요한 정적이 주는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건 이웃 사람들의 정겨운 말소리와 노래가 아닌가 싶다.
지난겨울, 혼자 내려와 사흘을 머물다 가는 어느 밤이었다.
마당에서 동중이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여자 친구랑 고구마 몇 개 구웠어요. 혼자 계실 선생님이 생각나서.” 두툼한 목장갑에 방금 구운 고구마를 들고 왔다. 새로 산 난로에 처음 구워본 거란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등 뒤에 눈발이 하얗게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맥주 두 캔을 답례로 드리고, 그 밤,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 먹으며 창밖의 밤눈을 보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그 밤,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고구마를 구워 들고 와 ‘계세요! 저기, 옆집이에요!’하던 동중이 아저씨의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옆집 동중이 아저씨가 시금치 씨앗 봉지를 들고 왔다.
“여자 친구랑 읍내에 나갔다가 사 왔네요. 혹 자리 있으면 심으시라고.” 점심 전에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오는 걸 봤다. 뒷자리엔 그가 말하는 여자 친구가 타고 있었다. 바깥출입을 할 때마다 그는 늘 여자 친구를 태우고 나간다.
나는 얼른 시금치 씨앗 봉지를 받았다. 씨앗이 상당히 남아있다. 먹을 만치 몇 줄 심고 말았단다. 저번엔 쓰다 남은 석회비료 반 포대를 마당에 던져놓고 갔다.
나는 하던 일을 놓고 안에 들어가 아내가 만들어 넣어준 쑥떡을 꺼내고, 바나나 세 개를 잘라 동중이 아저씨 손에 들려 정중히 보냈다.
동중이 아저씨가 옆집으로 이사 온 건 지난 가을이다. 본디 옆집엔 경희 아빠 내외가 살았는데, 그리 멀지 않은 저수지 근방 문중 땅으로 이사를 가고, 동중이 아저씨가 왔다. 인천이 집인데 친구들과 어울려 술만 마시고 살면 뭐할까 싶어 시골에 살러 왔단다. 그는 놀랍게도 함께 온 여자를 ‘여자 친구’라 불렀다.
그는 여자 친구를 사랑한다. 요 산 너머에 포도밭을 얻어 그걸 소일삼아 사는데 아침이면 오토바이에 여자 친구를 태우고 가고, 저녁이면 돌아와 알콩달콩 산다.
울타리 없이 배수로를 경계로 살다 보니 가끔 그 여자 친구라는 분과 마주친다. 60대. 깔끔한 도시여자다. 서울서 내려오는 길에 반찬거리도 구할 겸 백암 마트에 들르면 나는 그 댁 과일도 가끔 챙겨다 드릴 때가 있다. 일부러 읍내에 나가지 않으면 사과 한 쪽, 라면 하나도 살 곳 없는 곳이 시골이다.
그걸 가끔 건네 드려 그런지 뭐라도 생기면 내게 꼭 보 갚음을 한다.
“제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게 음악 듣는 거예요.” 동중이 아저씨가 여자 친구에 대해 말하면 여자 친구분이 그런다. 음악은 무슨! 그냥 우리 가요 듣는 게 좋아 가끔 듣는 거지.
“가사가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 게 좋아 듣는 편이에요.”
그분의 취미를 나도 안다.
밭에 모종을 하거나, 풀을 뽑거나, 고추를 따고, 거름을 펼 때면 그 댁 창 너머로 CD 노래가 들려오곤 한다.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미지의 세계’, ‘꽃밭에서’ 같은 노래는 지금도 기억난다. 그런 노래는 한번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하루종일 흥얼거리게 되어 좋다.
시골살이의 좋은 점은 고요한 정적이 주는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건 이웃 사람들의 정겨운 말소리와 노래가 아닌가 싶다.
지난겨울, 혼자 내려와 사흘을 머물다 가는 어느 밤이었다.
마당에서 동중이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여자 친구랑 고구마 몇 개 구웠어요. 혼자 계실 선생님이 생각나서.” 두툼한 목장갑에 방금 구운 고구마를 들고 왔다. 새로 산 난로에 처음 구워본 거란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등 뒤에 눈발이 하얗게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맥주 두 캔을 답례로 드리고, 그 밤,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 먹으며 창밖의 밤눈을 보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그 밤,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고구마를 구워 들고 와 ‘계세요! 저기, 옆집이에요!’하던 동중이 아저씨의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