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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회화나무 아래에서 꿈꾸는 사랑

[강판권 교수님] 회화나무 아래에서 꿈꾸는 사랑

by 강판권 교수님 2019.07.26

콩과의 갈잎큰키나무 회화나무는 꿈의 나무다. 회화나무는 더운 여름에 꽃을 피우는 정열의 나무다. 그래서 나는 회화나무 아래서 향기 나는 사람과 함께 나눈 사랑을 늘 추억한다. 회화나무가 꿈의 나무인 까닭은 괴안몽(槐安夢) 때문이다. 괴안몽은 중국의 당나라 덕종(德宗) 때 강남 양주 땅에 살고 있는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집 남쪽 커다란 회화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 마당 처마 밑에서 잠이 들어 꾼 꿈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괴안몽은 일장춘몽(一場春夢) 혹은 남가일몽(南柯一夢)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인생이 한바탕 꿈같은 것이라면 순우분처럼 회화나무 아래 낮잠을 자면서 사랑의 꿈을 꿀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지도 모른다.
회화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 전통시대에 아주 중요하게 여긴 나무 중 하나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회화나무를 학자수(學者樹)라 부른다. 회화나무를 학자의 나무라 부르는 것은 중국 주나라 때 사(士)의 무덤에 이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국 주나라에서는 삼공(三公)이 천자를 알현할 때 세 그루의 회화나무 아래에서 각각 대기했다. 그래서 세 그루의 회화나무, 즉 삼괴(三槐)를 삼공이라 부른다. 중국 주나라의 회화나무를 이용한 이 같은 제도 때문에 중국의 송나라 이후 왕조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궁궐 및 성리학 공간에 회화나무를 즐겨 심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궁궐인 창덕궁 안의 8그루의 회화나무 천연기념물을 비롯해서 성균관의 명륜당 앞 회화나무, 경북 경주시 옥산서원 앞의 회화나무 등 전국 곳곳 성리학 공간에서 흔하게 회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회화나무를 의미하는 한자인 ‘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수용했다. 하나는 중국에서 사용하는 회화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느티나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괴’는 문장에 따라 신중하게 해석하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시대 양반들이 남긴 문집의 관련 글자를 해석할 때 오역이 많이 발생한다. 아울러 우리나라 성리학 공간에서 만나는 느티나무는 회화나무를 대신한 나무다. 나는 이 같은 경우를 문화변용이라 부른다. 나무의 문화변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성리학 공간의 상징 나무를 오해할 수 있으니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내가 다닌 고향 초등학교에 300살이 넘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살고 있다. 나는 학창 시절 이곳에 회화나무가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40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나무를 공부한 뒤에야 알았다. 회화나무가 살고 있는 바로 옆에는 느티나무 두 그루도 함께 살고 있다. 나는 학창시절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들은 간혹 이곳에 학생을 모아놓고 행사를 갖기도 했다. 특히 선생님들은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만든 그늘 덕분에 여름철에 학생들을 이곳에 모이게 해서 행사를 진행했다. 그 당시에는 회화나무 꽃이 여름에 피는 줄도 몰랐지만 내가 회화나무 아래에서 여전히 사랑을 꿈꾸는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화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진 사랑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