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제품’ 뿐이었던 삶] 단지 ‘제품’ 뿐이었던 삶
[단지 ‘제품’ 뿐이었던 삶] 단지 ‘제품’ 뿐이었던 삶
by 한희철 목사님 2019.07.31
싱가포르의 의사 테오 씨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숙연했습니다. 삶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지요. 한창 젊은 나이에 외과의가 되었고, 하는 수술마다 잘 됐고, 환자가 끊이지 않았고, 가족도 화목했고, 친구도 많았고, 누구나 그를 부러워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인생이었지만 그는 어느 날 폐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선고를 받고 말았습니다.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던 테오 씨는 후배 의대생들을 위해 강단에 섰고, 그가 남긴 강의가 영상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지요.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가난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성공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성공이란 곧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자라났습니다. 매사에 경쟁적인 태도를 취했고, 공부도 운동도 모두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의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안과 의사가 된 테오 씨가 성형외과로 눈을 돌린 것은 안과 진료로는 그가 바라던 만큼의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로를 변경한 그의 선택은 현명해 보였습니다. 안과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입이 늘어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의사 네 명을 둔 원장이 되었습니다.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하며 스포츠카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고, 스포츠카 애호가 모임에 가입해 주말마다 레이싱을 하며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과 파티를 즐기는 등 화려한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최고 정점에 선 그는 얼마든지 인생의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느닷없이 찾아온 말기 암 진단 소식은 그의 삶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모든 것들, 스포츠카, 멋진 집, 별장, 명예로운 상장 등은 한순간에 가치를 잃고 말았습니다. 투병 생활을 하는 몇 달간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준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항암치료를 받고 너무너무 아플 때 페라리를 끌어안고 운다고 해서 편안해지진 않았다며 새롭게 깨닫게 된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털어놓았습니다.
혹시라도 암을 이겨내고 다시 환자를 돌볼 수 있게 된다면 완전히 다른 의사가 될 것이라는 테오 씨의 말은 아프게 다가옵니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차트에 기록된 병명이나 증상이 아닌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진료해야 한다는 소중한 깨달음이 결국은 뒤늦은 깨달음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후배들에게 강의를 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오 씨는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온라인 추모 사이트에 미리 남겨 둔 자신의 부고에는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정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부디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원하던 모든 것을 얻었지만 결국 자신은 사회의 기준에 잘 들어맞는 제품이었다는 테오 씨의 고백이 우리 삶의 가치와 방향을 정하는데 유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가난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성공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성공이란 곧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자라났습니다. 매사에 경쟁적인 태도를 취했고, 공부도 운동도 모두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의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안과 의사가 된 테오 씨가 성형외과로 눈을 돌린 것은 안과 진료로는 그가 바라던 만큼의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로를 변경한 그의 선택은 현명해 보였습니다. 안과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입이 늘어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의사 네 명을 둔 원장이 되었습니다.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하며 스포츠카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고, 스포츠카 애호가 모임에 가입해 주말마다 레이싱을 하며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과 파티를 즐기는 등 화려한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최고 정점에 선 그는 얼마든지 인생의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느닷없이 찾아온 말기 암 진단 소식은 그의 삶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모든 것들, 스포츠카, 멋진 집, 별장, 명예로운 상장 등은 한순간에 가치를 잃고 말았습니다. 투병 생활을 하는 몇 달간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준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항암치료를 받고 너무너무 아플 때 페라리를 끌어안고 운다고 해서 편안해지진 않았다며 새롭게 깨닫게 된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털어놓았습니다.
혹시라도 암을 이겨내고 다시 환자를 돌볼 수 있게 된다면 완전히 다른 의사가 될 것이라는 테오 씨의 말은 아프게 다가옵니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차트에 기록된 병명이나 증상이 아닌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진료해야 한다는 소중한 깨달음이 결국은 뒤늦은 깨달음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후배들에게 강의를 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오 씨는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온라인 추모 사이트에 미리 남겨 둔 자신의 부고에는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정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부디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원하던 모든 것을 얻었지만 결국 자신은 사회의 기준에 잘 들어맞는 제품이었다는 테오 씨의 고백이 우리 삶의 가치와 방향을 정하는데 유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