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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

[정운 스님]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

by 정운 스님 2019.08.06

너로 말하건 또한
나로 말 하더라도
빈 손, 빈 가슴으로 왔다가는 사람이지
… … … …
사락사락 싸락눈이 한줌 뿌리면
솜털 같은 실비가
비단결 물보라로 적시는 첫봄인데

너도 빗물 같은 정을
양손으로 받아주렴

비는 뿌린 후에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운 사랑으로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
아무것도

무상無償으로 주는
정의 자욱마다엔 무슨 꽃이 피는가.
이름 없는 벗이여.
- 김남조

위의 시는 김남조님의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이다. 비는 내리면서 쏟은 만큼 되받을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이쁨을 시 구절로 표현하였다. 비처럼 사람이 살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런 바람 없이 상대에게 베풀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솔직히 부모 자식 간에도 아무런 바람 없이 무조건 사랑을 베푸는 일이 쉽지 않다. 베풂만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든 관념 두지 않는 일이 어려운 것 같다. 고대 중국 청담사상이 유행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은둔을 했었다. 이 은둔자들도 누군가 자신이 은둔한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랐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자신이 베푼 만큼 회수되지 못하면, 억울해하고 한탄한다. 사람 간에 다툼이 발생하는 것도 이런 되갚음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한풀이가 적지 않다. 어쨌든 무언가를 베풀고 그것에 관념두지 않는 순수한 행위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베풀고도 바람이나 관념 두지 않는 마음씀은 종교적인 훈련이 되어야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마태복음>에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심지어는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였고, 불교에서는 대가 없이 베푸는 행위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한다. <금강경>에 제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떤 마음 자세를 갖고 살아야 합니까?”
“수보리야, 수행자는 어떤 현상[法]에 집착 없이 보시해야 한다. 무엇인가 바라거나 관념을 두지 않고 베풀어야 한다[無住相布施]. 이런 마음으로 보시를 행한다면 매우 무궁무진한 복덕을 받을 것이다.” - 4품
이 무주상보시, 집착 없는 무심無心[無住相]의 경지란 수행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요, 경지이다. 은혜를 베풀었으되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 공을 세웠으되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는 쿨(cool)한 마음을 갖는 것, 이런 행실이 갖춰지기 어렵지만 글귀로나마 마음에 새긴다면 성자의 길에 조금이나마 다가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