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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 낙타처럼, 소처럼 걸어라

[정운 스님] 낙타처럼, 소처럼 걸어라

by 정운 스님 2019.09.03

함부로 달리지 않고
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제 페이스는 제가 알아서 꿰매며 간다.

공연히 몸에 열을 올려
명을 재촉할 이유란 없는 것이다
물려받은 달음박질 기술로
한 번쯤 모래바람을 가를 수도 있지만

그저 참아내고 모른 척 한다
모래 위의 삶은 그저 긴 여행일 뿐
움푹 팬 발자국에
빗물이라도 고이며 고맙고

가시 돋친 꽃일망정 예쁘게 피어주면
큰 눈 한번 끔뻑함으로 그뿐
낙타는 사막을 달리지 않는다

위의 시는 권순진님의 ‘낙타는 뛰지 않는다’ 시의 일부분이다. 독자님들은 ‘왜 글 첫머리에 낙타를 거론할까?’라며 의아할 것이다. 우연히 어느 지인으로부터 낙타가 달린 열쇠고리를 선물 받았는데, ‘낙타’라는 존재의 캐릭터를 염두에 두어서다.
낙타는 3일간 물을 마시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동물이다. 등에 있는 혹은 물주머니가 아니고 지방 덩어리인데, 사막을 통과할 때 혹 속의 지방을 분해시켜 필요한 수분을 보급받기 때문이다. 1회에 57ℓ의 물을 마신 뒤에 사막을 건너면서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며칠을 견디는 셈이다. 이런 낙타의 캐릭터 때문에 고대로부터 근자에 이르기까지 대상무역에 이용되고, 죽은 뒤에는 식용으로, 털은 직물 옷감으로 사용된다. 낙타의 삶과 죽음은 통째로 인간의 편익을 위해 존재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낙타가 며칠간 물을 먹지 않을 만큼의 생체리듬으로 험한 사막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함부로 달리지 않고 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 제 페이스대로 묵묵히 간다는 것, 이 얼마나 멋진 동물인가?! 바로 이런 삶이 내게도 필요하다.
선사의 이상형을 ‘우행호시牛行虎視’라는 단어로 형상화한다. 다년간의 수행을 통해 걸음은 소걸음처럼 신중하게 느릿느릿 걷고, 정신은 호랑이 눈빛처럼 번득인다는 뜻이다. 낙타가 제 페이스대로 걷는 것과 소의 우직함, 인간도 이런 동물의 캐릭터를 통해 삶의 귀감을 삼아야 하지 않을까?
‘삶[고난의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때, 낙타가 육신의 영양분을 비축했다가 조금씩 활용하며 묵묵히 제 길을 가듯 인간도 정신적 영양분을 비축해두었다가 힘겨운 일이 닥칠 때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절대 함부로 날뛰거나 자만하지 않고….
평상의 삶에 있어, 아니 그대가 인생에서 무엇인가 성취코자 한다면, 장시간의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가 경거망동하지 않고, 남과 비교해 마음 헐떡이지 않으며, 묵묵히 제 페이스대로 걷는 것처럼, 그렇게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