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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대표님] 노안은 지혜안이다

[김재은 대표님] 노안은 지혜안이다

by 김재은 대표님 2019.09.05

지하철을 자가용처럼 타고 다니다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휴대폰에 푹 빠져있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고 주위도 돌아보면 좋으련만. 저러다 목이라도 굳어질까 봐 살짝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 사람들 중에는 눈앞의 휴대폰이 잘 안 보이니 안경을 벗고 대열에 합세한 사람도 눈에 띈다. 이른바 노안(老眼)이 몰려온 탓이리라.
먼 곳을 보다가 가까운 사물을 보려면 눈의 굴절력이 변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수정체가 딱딱해지고 탄력이 떨어지게 되면 이로 인해 조절력이 감소되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들을 보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잘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고 순간 이제 나도 나이가 드는구나 하는 생각에 작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보통 ‘노안’이 오는 때가 40대 중반이나 후반쯤인데 벌써 ‘늙은 눈’이라니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100세 시대, 유엔은 18세에서 65세까지를 청년으로 정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어쨌거나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니 이를 어찌한다?
조금 달리 생각해 보기로 했다.
대지에 싹이 트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언젠가는 끝내 마지막이 오듯이 우리의 몸이 생로병사를 겪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늙어가는 변화에 한탄하기보다는 ‘다른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잘 안 보이면 답답해하지 말고 조금 여유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찬찬히 들여다보자.
그러다 보면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잘 보이지 않으면 지금부터는 모든 것을, 많은 것을 보려 하지 말고 ‘적당히’ 보이는 것만 보면 어떨까. 보이는 것 이것저것 다 참견해오던 삶을 벗어나 ‘적당히’ 넘어가 주기도 하고 하면서 말이다. 이제 육체적인 눈만이 아닌 마음의 눈,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나아가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지금까지 내 의식밖에 있던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 되고 그로 인해 인생의 진짜 맛을 맛보게 될 거라 믿는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오른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은지 꽤 되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듣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니 지낼만하다. 한쪽 귀만 들리니 소음은 통과시키고 고운 소리, 좋은 소리만 담아두기에 좋다. 오히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습관이 생겨 저절로 경청의 인생을 사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잘 보이고 잘 들리는 ‘잘 인생’에서 지금 여기의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느끼는 ‘그대로 인생’으로 발을 옮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거기에 하나 더 누군가에게 ‘잘 보이는’ 삶도 생각해보자.
성형수술이 그렇고, 보기 좋다고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난개발하다 역효과의 부메랑을 맞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자.
노안이 아닌 지혜안의 삶, 어쩌면 나이듬의 선물이기에 이를 마음껏 누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