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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대표님] 나무야 나무야

[김재은 대표님] 나무야 나무야

by 김재은 대표님 2019.09.24

언제 여름이 갔는지 알 수 없지만 가을이 온 것만큼은 분명한 듯하다.
몰려오는 한기에 새벽녘 이불을 잡아당기는 것을 보면 말이다.
비록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난지 오래인데도 모기가 어슬렁거리며 날아다니긴 하지만.
그나저나 이렇게 한가한 이야기를 끄적거려도 되는지 모르겠다.
오래전 한 드라마에서 ‘회사 안은 전쟁이고 밖은 지옥’이라고 하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는 장관임명을 두고 이미 전쟁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하기야 수천 년 전에 이미 한 성인은 세상은 고해(苦海)라고 갈파했으니 요즘 세상만 유별나게 이상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얼마 전 두 권의 책 저자의 특별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강원도 산골에서 목공소를 하는 저자의 나무 인문학 이야기이다.
한국의 목재 산업이 활황을 띠던 시절부터 수십 년간 목재 딜러, 목재 컨설턴트로 전 세계를 누빈 그가 나무 인생에서 느낀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인문학적 지식으로 풀어내 나무와 사람, 과학과 역사, 예술이 어우러진 깊고 넓은 나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한갓 나무를 통해 이토록 깊은 사유와 지혜를 할 수 있다니 놀랍고도 신기했다. 비록 그가 나무를 심기보다는 베어낸 사람에 불과하다며 웃었지만.
또 하나는 ‘다시 태어나면 이 땅에서 다시 살겠는지’를 묻는 도발적인 책에 대한 강의이다.
수많은 희생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인 부를 누리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도 빈곤한 것은 왜일까?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우리의 행복감은 점점 떨어지고, 자살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등 왜 이런 역설의 바람이 한국을 집어삼키게 되었는지 묻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창의성, 상호신뢰, 체제와 규율의 준수, 도전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사회, 즉 ‘품격 있는 사회’가 되었을 때, 한국의 내일이 열릴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연하게 이어진 두 번의 강의가 특별하게 와닿은 것은 지금 우리의 전쟁 같은 현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이다. 불신, 불평, 불만으로 표현되는 3불의 세상이 엄청난 불길로 우리 스스로를 태우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세상의 사람들은 물론 가까운 사람조차 믿지 못하는 ‘불신(不信)’이 거대한 고목의 그것보다 깊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한 대학교수는 한 책에서 자연을 착취하고 환경을 탓하며 살아가는 인간과는 달리 나무는 그 누구도 착취하거나 나무라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살 뿐이라고 했다.
또한 나무는 주어진 자리에서 자리를 탓하지 않고 부단히 변신을 거듭하면서 어제와 다른 나무로 성장하려는 힘에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도 했다.
고인이 된 쇠귀 신영복 선생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며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라 했다.
집에 불이 났는데도 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방안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같은 세상이다. 그런데도 상대에게 손가락질하며 ‘남 탓’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세상에 가까이 있는 나무를 들여다보면 좋겠다. 그 나무가 전하는 묵묵함과 지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좋겠다. 우리가 이미 나무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무야 나무야! 내 말이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