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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가을 여행: 전남 장흥군 가지산 보림사

[강판권 교수님] 가을 여행: 전남 장흥군 가지산 보림사

by 강판권 교수님 2019.11.04

우리나라 산사의 가을은 무척 아름답다. 가을 산사는 그 자체로 청정해서 부처의 마음이다. 부처는 곧 나 자신의 마음이다. 그래서 인간이 만나는 자연생태는 곧 인간의 청정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 위치한 가지산 보림사는 우리나라 선종의 원조 사찰이다. 이곳에는 국보 2점과 보물 3점이 있을 만큼 문화재의 보고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욱이 우리나라 선종을 상징하는 사찰인데도 화장실을 비롯한 부대 시절은 아주 빈약하다.
사찰은 사람마다 찾는 이유가 다르다.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 중 하나는 차나무다. 이곳은 우리나라 떡차의 탄생지다. 이곳에서 만든 떡차인 ‘청태차’는 발효 과정에서 푸른 이끼 같은 색깔이 생겨서 붙인 이름이다. 보림사 주변에는 야생차들이 살고 있고, 보림사에는 ‘티로드’를 조성해서 차인들 뿐만 아니라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가을에는 차나무에 꽃이 핀다. 하얗게 피어나는 차나무의 꽃은 영롱하다. 향기가 나는 차 꽃을 ‘설’ 이라 부른다. 그래서 중국 최초의 차 전문서인 당나라 육우의 『다경』에는 차의 이름 중 하나로 설을 기록하고 있다. 차나무의 꽃은 열매와 함께 만난다. 그래서 차나무를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 부른다. 차나무의 이 같은 특성은 다른 나무에서 쉽게 볼 수 없다. 『다경』에서는 차나무의 잎이 꼭두서니과의 치자나무 잎과 닮았다고 표현했다. 차밭에서 치자나무를 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치자나무의 꽃도 차나무의 꽃처럼 희다. 치자나무와 형제인 커피나무의 꽃도 희다.
보림사의 차가 유명한 것은 이곳의 보조선사탑비(보물 제158호)에 ‘차약(茶藥)’의 글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보조선사탑비는 신라 헌강왕 때 세워졌다. 따라서 보림사의 차는 우리나라 차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차약’은 차를 약으로 사용한 것을 의미한다. 차의 약효는 차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다. 중국의 경우 육우가 등장하기 전까지 차는 대부분 약으로 사용했다. 차를 약으로 사용한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보림사의 청태차는 우리니라 차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도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보조선사탑비는 비의 내용만이 아니라 조각도 무척 아름답다. 특히 탑비 옆에 살고 있는 아주 큰 단풍나무는 탑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나무는 문화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사찰의 주인공이다. 나는 언제나 문화재를 나무와 함께 감상한다. 나무를 모르면 사찰을 이해할 수 없다. 사찰의 건물이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보림사의 보물 중에서 처음 만나는 목조사천왕상(보물 제1254호)도 나무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문화재다. 보림사의 남·북 삼층석탑과 석등(국보 제44호)도 사천왕상을 지나 오른 편에 살고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감상하면 한층 아름답다. 인도와 중국의 보림사와 함께 세계 삼대 보림사인 장흥의 보림사에서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의 잎 사이로 국보를 바라보는 순간 극락을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