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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묻지 않고 듣지 않아도

[한희철 목사님] 묻지 않고 듣지 않아도

by 한희철 목사님 2019.11.06

며칠 전이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있는데, 맞은편 창문 밖으로 사다리차가 보였습니다. 연립주택 주차장에 사다리차가 서 있으니 당연히 누군가가 이사를 오나 보다 싶었습니다. 사다리차는 3층까지 사다리를 길게 늘어뜨린 뒤 연신 짐들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상상력이었을까요, 사람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여겨집니다. 예전 같으면 전부 손으로 짐을 옮겨야 하는 일, 힘도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거롭기 그지없는 일인데, 지금은 사다리차로 짐을 옮깁니다. 누가 사다리와 자동차를 하나로 묶을 생각을 해서 이처럼 이사를 쉽게 한 것일까, 그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면 상상력은 상상력에 머물지 않습니다. 상상력 안에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효용성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포클레인만 봐도 그렇습니다. 마치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듯이 땅을 파고 흙을 실어 옮기는 포클레인 모습을 보면 그 편리함과 능력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사다리차를 보면서 누군가가 이사를 오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이사를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농촌과 같이 작은 동네에서는 누가 이사를 오고 누가 이사를 가는지 모를 리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온 동네의 관심사가 되어 이사를 보내고 맞게 됩니다. 그런데 도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도시의 특징 중 하나는 이웃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이사를 오거나 이사를 가거나 해도 대부분의 이웃들은 모릅니다. 특별히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따로 관심을 갖지 않은 채 중요한 일들이 진행됩니다. 도시에서의 삶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해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는 삭막함을 도시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책상에 앉아서 사다리차가 오르내리는 모습만 보고서 이사를 오는지 가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은지요? 찾아가서 물어본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이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알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사다리차는 상자를 싣고 3층 창문까지를 연신 오르내렸습니다. 상자가 3층으로 올라가면 집 안에 있던 누군가가 상자를 받았지요. 그런데 유심히 보니 올라가는 상자는 가벼웠고, 내려오는 상자는 무거웠습니다. 빈 상자가 올라가서 짐을 채운 뒤에 무거운 상태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창문에 서서 상자를 받을 때의 모습과 상자를 실을 때의 모습을 보니 대번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다리차처럼 우리의 삶 속에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같은 모습이라 하여도 얼마든지 헤아릴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서 어떤 일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지요. 말이나 몸짓만으로 마음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따로 묻지 않고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