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스님] 참 어리석음[眞愚]
[정운 스님] 참 어리석음[眞愚]
by 정운 스님 2019.12.10
주위에 똑똑한 사람이 있다. 오랫동안 지켜 봐왔던 분으로 박사 학위도 두어 개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분은 여러 학문 분야에 기웃기웃하며 다양하게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아쉬운 것은 그분이 ‘자신만이 여러 분야에 뛰어난 인재’이며, ‘자신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자만감에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분이 여러 일들과 여러 학문을 겸하다 보니,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못해 보인다. 그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조금 모자란 듯, 어리숙해 보이는 지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이 영리해지기는 쉬워도 어리석어지기는 힘들다고 하였다. 참 재덕을 갖춘 자는 깊이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 법이거늘....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다.
“矜名不若逃名趣 練事何如省事閒”
이름을 자랑함은 이름을 숨기는 것만 같지 못하고,
일에 익숙한 것이 일을 덜어 어찌 한가로움만 하겠는가!
자신의 명성이 조금 높아졌다고 이를 빌미 삼아 과시하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노출시켜 우쭐대는 모습은 마치 광대와 같다. 즉 사리에 숙달해 자랑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감춤으로써 그윽한 면모를 품고 있는 사람이 ‘참 자유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선사들 중에는 자신의 이름에 ‘우愚’나 ‘눌訥’ 자를 쓴다. 고려 때의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년)과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가 그러한 예다. 또 선사들은 편지를 쓸 때, 자신을 지칭해 “어리석은 중” “모자란 중”이라며, 겸허함을 표현한다. 자신을 다독이는 자신에 대한 견제였다고 본다.
고려 시대 정각국사 지겸(志謙, 1145~1229)은 『종문원상집』을 저술한 선사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해 천품이 영특하고, 내외전에 통달해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25세에 지겸이 승과를 보기 위해 준비했는데, 승과를 거행한 내시 정중호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즉 신인이 나타나서 “그대는 명일에 왕자의 스승을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겸은 그때 승과에 급제했다. 지겸은 만년에 스스로 ‘지겸至謙’이라 불렀는데, ‘지극한 겸손’이라는 뜻이다. 지겸은 한 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초라한 집에 태어나 왕자의 스승까지 되었으니, 분에 넘치는 승은을 입었다. 내가 계속 왕사 자리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면서 왕사 자리도 사양했건만 최충헌은 ‘지겸만한 승려가 없다’며 선사를 국사로 추천했다. 선사가 입적한 뒤 이규보가 비문을 작성했는데, 비문 마지막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오가는 자들이여, 말 타고 가거든 말에서 내릴지어다. 혹 부처에게 절은 하지 않을지라도 오직 이 비에만은 꼭 절을 하고 지나가라.”
이렇게 지겸이 한없이 겸손함을 보였기에 불교사의 스승[국사]으로 존경받고 있다. 혹 높은 명예나 지위, 경제력을 갖추었을지라도 조금 모자란 듯 살자. 괜히 어쭙잖은 지식과 명예로 자신을 과대 포장하지 말자.
“矜名不若逃名趣 練事何如省事閒”
이름을 자랑함은 이름을 숨기는 것만 같지 못하고,
일에 익숙한 것이 일을 덜어 어찌 한가로움만 하겠는가!
자신의 명성이 조금 높아졌다고 이를 빌미 삼아 과시하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노출시켜 우쭐대는 모습은 마치 광대와 같다. 즉 사리에 숙달해 자랑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감춤으로써 그윽한 면모를 품고 있는 사람이 ‘참 자유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선사들 중에는 자신의 이름에 ‘우愚’나 ‘눌訥’ 자를 쓴다. 고려 때의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년)과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가 그러한 예다. 또 선사들은 편지를 쓸 때, 자신을 지칭해 “어리석은 중” “모자란 중”이라며, 겸허함을 표현한다. 자신을 다독이는 자신에 대한 견제였다고 본다.
고려 시대 정각국사 지겸(志謙, 1145~1229)은 『종문원상집』을 저술한 선사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해 천품이 영특하고, 내외전에 통달해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25세에 지겸이 승과를 보기 위해 준비했는데, 승과를 거행한 내시 정중호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즉 신인이 나타나서 “그대는 명일에 왕자의 스승을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겸은 그때 승과에 급제했다. 지겸은 만년에 스스로 ‘지겸至謙’이라 불렀는데, ‘지극한 겸손’이라는 뜻이다. 지겸은 한 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초라한 집에 태어나 왕자의 스승까지 되었으니, 분에 넘치는 승은을 입었다. 내가 계속 왕사 자리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면서 왕사 자리도 사양했건만 최충헌은 ‘지겸만한 승려가 없다’며 선사를 국사로 추천했다. 선사가 입적한 뒤 이규보가 비문을 작성했는데, 비문 마지막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오가는 자들이여, 말 타고 가거든 말에서 내릴지어다. 혹 부처에게 절은 하지 않을지라도 오직 이 비에만은 꼭 절을 하고 지나가라.”
이렇게 지겸이 한없이 겸손함을 보였기에 불교사의 스승[국사]으로 존경받고 있다. 혹 높은 명예나 지위, 경제력을 갖추었을지라도 조금 모자란 듯 살자. 괜히 어쭙잖은 지식과 명예로 자신을 과대 포장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