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신년 달력이 오는 계절
[권영상 작가님] 신년 달력이 오는 계절
by 권영상 작가님 2019.12.31
방안 빈 책상 위에 새해 달력이 여럿 와 있다. 아내가 구해다 놓은 것들이다. 주로 금융기관에서 만든 달력이다. 벽걸이 달력도 있고 탁상 달력도 있다. 새해 달력이 집안에 쌓이면 왠지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올 한 해도 벌써 다 간다. 성탄절이 지났고, 또 이 무렵쯤이면 나도 누군가에게 보내야겠지만 또 누군가로부터 연하엽서를 주고받을 일이 있다. 한 해가 빨리 흘렀다. 아니 초기엔 느리게 흘렀다. 여름이 지나고 후반기로 들어올수록 시간은 빨리 흘렀고, 망년이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마치 쏘아놓은 살처럼 연말의 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나름대로 올 한 해는 잘 사용했다. 대부분을 먹고 사는 일에 유용하게 썼다. 때론 허투루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만한 실수쯤 왜 없겠는가. 2019년 첫 아침에 받은 365일이란 시간은 하자 없이 온전했고, 사용 중에도 문제가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깨어지거나 부서진 불량 시간도 일체 없었다. 그러니 반품 또한 없었다.
‘올해도 이렇게나 많은 시간 선물을 또 보내주셨구나!’
한 장 한 장 달력을 넘기는 내 입에서 문득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선물 중에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있을까. 나는 애써 12월까지 달력을 다 넘겼다. 그러고 보니 시간 선물이 달력 안에 가득하다. 바구니에 수북이 담긴 과일 같이 싱그럽고 달콤하고 푸짐하다.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듯 넉넉해진다.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깨끗한 선물이다. 깨끗한 종이로 하루하루 잘 포장한, 그러니까 누구도 열어보지 않은, 둥우리에서 갓 꺼낸 둥그스럼한 달걀같이 이쁘다. 이 속엔 생명이 들어있다. 꿈이 들어있다. 둥우리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뜰로, 차츰차츰 세상을 넓혀나가는 꿈이 들어있다.
이 모두 내게 보내온 시간 선물이다. 흠잡을 데 없이 소담스럽다. 일그러지거나 울퉁불퉁하거나 생기다가 만 시간은 없다. 그 모양과 빛깔과 크기와 무게가 쪽 고르다.
이 많은 시간들은 이제 다가올 새해 아침부터 섣달그믐까지 나와 동행할 것이다. 이런 귀한 선물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옆집에서 떡이라도 한 접시 받으면 답례를 해야 한다. 음료수거나 과일 아니면 즐겨 읽는 시집이라도 한 권 접시에 얹어드리는 게 도리다. 그러듯이 비록 발신인은 알 수 없지만 시간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가 필요하다.
2019년 올해에도 나는 답례를 드렸다. 이름하여 신년 각오라는 답례품이다. 비록 작심삼일 만에 끝난 각오였지만 그 처음은 창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진부한 나의 작심삼일 계획은 이랬다. 한 달에 책 한 권, 영화 한 편, 그리고 국내 여행 한 번. 멀리 떠나가 있는 딸에게 이메일 한 번 하기.
전혀 어렵지도 않은 각오였다. 이쯤이야! 하고 나는 돈키호테처럼 돌진해 나갈 것을 다짐했고, 훌륭한 결실을 위해 술도 한 잔 했었다. 그러나 제대로 이루어진 거라곤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책은 못 읽어도 제법 서점은 들락였고, 영화는 못 보아도 극장 앞을 서성였고, 여행은 못 해도 여행을 꿈꾸며 자동차 연료를 가득 채운 적이 많았다.
다가올 새해에도 작심삼일 계획을 세워보라 한다면 이걸 세우겠다. 내 주변에 흩어져있는 시간들을 나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이제는 의무적이 아니라 책 읽고 싶다 할 때 읽고, 영화 보고 싶다 할 때 보는, 딸아이가 보고 싶다 하면 이메일함을 여는,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겠다. 그래서 내가 좀 즐거워지는 2020년을 만들고 싶다.
올 한 해도 벌써 다 간다. 성탄절이 지났고, 또 이 무렵쯤이면 나도 누군가에게 보내야겠지만 또 누군가로부터 연하엽서를 주고받을 일이 있다. 한 해가 빨리 흘렀다. 아니 초기엔 느리게 흘렀다. 여름이 지나고 후반기로 들어올수록 시간은 빨리 흘렀고, 망년이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마치 쏘아놓은 살처럼 연말의 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나름대로 올 한 해는 잘 사용했다. 대부분을 먹고 사는 일에 유용하게 썼다. 때론 허투루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만한 실수쯤 왜 없겠는가. 2019년 첫 아침에 받은 365일이란 시간은 하자 없이 온전했고, 사용 중에도 문제가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깨어지거나 부서진 불량 시간도 일체 없었다. 그러니 반품 또한 없었다.
‘올해도 이렇게나 많은 시간 선물을 또 보내주셨구나!’
한 장 한 장 달력을 넘기는 내 입에서 문득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선물 중에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있을까. 나는 애써 12월까지 달력을 다 넘겼다. 그러고 보니 시간 선물이 달력 안에 가득하다. 바구니에 수북이 담긴 과일 같이 싱그럽고 달콤하고 푸짐하다.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듯 넉넉해진다.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깨끗한 선물이다. 깨끗한 종이로 하루하루 잘 포장한, 그러니까 누구도 열어보지 않은, 둥우리에서 갓 꺼낸 둥그스럼한 달걀같이 이쁘다. 이 속엔 생명이 들어있다. 꿈이 들어있다. 둥우리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뜰로, 차츰차츰 세상을 넓혀나가는 꿈이 들어있다.
이 모두 내게 보내온 시간 선물이다. 흠잡을 데 없이 소담스럽다. 일그러지거나 울퉁불퉁하거나 생기다가 만 시간은 없다. 그 모양과 빛깔과 크기와 무게가 쪽 고르다.
이 많은 시간들은 이제 다가올 새해 아침부터 섣달그믐까지 나와 동행할 것이다. 이런 귀한 선물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옆집에서 떡이라도 한 접시 받으면 답례를 해야 한다. 음료수거나 과일 아니면 즐겨 읽는 시집이라도 한 권 접시에 얹어드리는 게 도리다. 그러듯이 비록 발신인은 알 수 없지만 시간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가 필요하다.
2019년 올해에도 나는 답례를 드렸다. 이름하여 신년 각오라는 답례품이다. 비록 작심삼일 만에 끝난 각오였지만 그 처음은 창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진부한 나의 작심삼일 계획은 이랬다. 한 달에 책 한 권, 영화 한 편, 그리고 국내 여행 한 번. 멀리 떠나가 있는 딸에게 이메일 한 번 하기.
전혀 어렵지도 않은 각오였다. 이쯤이야! 하고 나는 돈키호테처럼 돌진해 나갈 것을 다짐했고, 훌륭한 결실을 위해 술도 한 잔 했었다. 그러나 제대로 이루어진 거라곤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책은 못 읽어도 제법 서점은 들락였고, 영화는 못 보아도 극장 앞을 서성였고, 여행은 못 해도 여행을 꿈꾸며 자동차 연료를 가득 채운 적이 많았다.
다가올 새해에도 작심삼일 계획을 세워보라 한다면 이걸 세우겠다. 내 주변에 흩어져있는 시간들을 나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이제는 의무적이 아니라 책 읽고 싶다 할 때 읽고, 영화 보고 싶다 할 때 보는, 딸아이가 보고 싶다 하면 이메일함을 여는,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겠다. 그래서 내가 좀 즐거워지는 2020년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