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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꿩을 묻으며

[한희철 목사님] 꿩을 묻으며

by 한희철 목사님 2020.05.26

오래전 강원도에서 살 때였습니다. 하루는 꿩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실은 잡은 게 아니고 어쩌다가 주운 것이었습니다. 저녁 무렵 바람이나 쐴 겸 강가 쪽으로 나갔을 때였습니다. 저만치 도로 위에 직행버스가 서 있고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슨 사고가 난 게 아닌가 싶어 놀라서 달려갔지요.
가서 보니 사고는 사고였는데 사람이 다친 게 아니었습니다. 뜻밖에도 꿩이었습니다. 날아가던 꿩 한 마리가 달리는 버스 유리창에 부딪친 것이었습니다. 버스와 부딪친 후 바닥으로 떨어진 꿩을 운전기사와 승객들이 버스에서 내려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길 위에는 꿩의 깃털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한동안 주변을 살피던 사람들이 꿩을 찾지 못하자 다시 버스에 올랐고, 버스는 길을 떠났습니다. 혼자 남아 다시한 번 둘레를 찾아보았지만 꿩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마침 길 맞은편이 고사리가 많은 언덕, 고사리나 꺾어야지 하며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군데군데 불쑥불쑥 솟아 나온 고사리들이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잔뜩 구부린 채 땅을 박차고 나온 고사리는 언제 보아도 당차 보입니다. 겸손이 힘이라는 걸 생각하게 합니다.
경험한 이들은 알겠지만, 고사리를 꺾다 보면 마음이 무심해지곤 합니다. 어수선한 생각들이 하나 둘 사라져 마침내 마음이 단순해지곤 합니다. 불쑥 찾아오곤 하는 손님들 상에 없는 찬으로 올릴 마음으로 고사리를 꺾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쯤 고사리를 꺾어 나가던 나는 흠칫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수풀 사이에 누워있는 낯선 물체, 꿩이었습니다. 두 눈은 이미 감겨 있었지만 가슴을 만져보니 따뜻했습니다. 조금 전 버스에 부딪친 꿩이 분명했습니다. 길가에서 부딪친 꿩이 기를 쓰고 산으로 오르다 그곳에 이르러 기진해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꿩을 그렇게 잡게 된 것이었습니다. 집으로 꿩을 가져와선 꿩고기 먹으러 오라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며 수선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꿩을 뒷산에 묻고 말았습니다. 닭 모가지 한 번 못 비튼 여린 심성 탓이기도 했지만, 동네 할머니의 한 마디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꿩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할머니가 대뜸 장끼인지 까투리인지를 물었습니다. 까투리라고 하자 할머니가 탄식을 하듯 한 마디를 했습니다. “저런! 요즘이 알 품을 땐데.” 꿩을 잡은 나는 꿩고기 먹을 생각만 했지, 꿩이 알을 품을 때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생각의 차이가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뒷산에 올라 땅을 깊이 파고선 꿩을 묻어주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때로 마음이 무뎌져서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을 놓칠 때마다 꿩 생각이 떠오릅니다. 꿩고기를 맛있게 먹는 것보다는 생명의 소중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 일, 욕심이 앞서면 안 될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