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스님] 왜 사람은 말년에 철이 드는가?!
[정운 스님] 왜 사람은 말년에 철이 드는가?!
by 정운 스님 2020.06.15
필자가 조금 젊었을 때,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젊을 때는 시간이 잘 안 가는 데, 나이가 들면 시간이 매우 빨리 흘러간다.”
그때는 이해를 잘 못했는데, 필자가 나이 들어보니 그 말이 실감 난다. 그 이유는 다음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한다.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의 ‘들오리 이야기’다. 지중해 해변에 살던 들오리 떼들이 추운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무리들이 한참을 날아가다 어느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리 가운데 한 마리가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들오리를 편의상 ‘나태’라고 이름 붙이자. ‘나태’는 아름다운 집 정원에서 집오리들이 옹이 종기 모여 모이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정원은 꽃들로 만발해 있고, 주인이 먹이를 챙겨주면서 이뻐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태 들오리는 집오리들이 너무 부러웠다. 이렇게 생각하는 즈음, 한쪽 날개가 무척 아팠다. 그래서 잠시 쉬어가려고 아름다운 집 정원에 내려앉았다. 들오리 한 마리가 집오리 무리 속에 끼니, 집오리들은 새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나태는 집오리들과 어울리며 신나게 놀았다.
이렇게 수여 일을 정신없이 놀다가 문득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니, 야생에서 자유롭게 날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나태는 다시 날아오르려고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살이 많이 찐 데다 나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나태는 ‘안되겠다. 오늘만 더 놀고 내일 날아가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은 몸이 더 무겁고 힘들어서 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일’ ‘내일’ 하며 반복하다 몇 달이 후딱 지나갔다.
어느 날 하늘에 들오리 떼들이 아름다운 수를 놓으며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난 들오리는 날아오르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때는 늦었다. 더 이상 날 수 없었다. 수차례 내일 내일을 반복하다 결국 삶이 초라해진 것이다.
불교에서도 ‘한고조’라고 하여 들오리 이야기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한고조 새가 자기 집을 짓지 않고, 노는 것에 정신 팔려 지내다 결국 얼어 죽는다는 이야기다. 인생에서 성공이 어찌 쉬운 일인가? 꼭 성공이 아닌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삶을 살기에는 흥청망청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영부영 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노년에 이른다. 필자 또한 그러하다.
스님들도 젊을 때는 이 공부 저 공부 하며 지내면서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말년 들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이뤄지지 않음을 아쉬워한다. 아마 이런 점은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에서 해놓은 것은 없고, 속절없이 나이만 드니 그 절박함이 삶의 정체성을 생각하며, 후회한다. 그래서 중ㆍ노년이 되었을 때는 시간이 속절없이 빨리 간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삶에 대해 회한이 들기 시작하고, 인생에 철이 들면서 시간에 대한 절박함이 드는 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젊은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것이요, 혹 나이 들었다고 생각할지라도 삶의 진취성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해보자. 바로 지금.
“젊을 때는 시간이 잘 안 가는 데, 나이가 들면 시간이 매우 빨리 흘러간다.”
그때는 이해를 잘 못했는데, 필자가 나이 들어보니 그 말이 실감 난다. 그 이유는 다음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한다.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의 ‘들오리 이야기’다. 지중해 해변에 살던 들오리 떼들이 추운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무리들이 한참을 날아가다 어느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리 가운데 한 마리가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들오리를 편의상 ‘나태’라고 이름 붙이자. ‘나태’는 아름다운 집 정원에서 집오리들이 옹이 종기 모여 모이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정원은 꽃들로 만발해 있고, 주인이 먹이를 챙겨주면서 이뻐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태 들오리는 집오리들이 너무 부러웠다. 이렇게 생각하는 즈음, 한쪽 날개가 무척 아팠다. 그래서 잠시 쉬어가려고 아름다운 집 정원에 내려앉았다. 들오리 한 마리가 집오리 무리 속에 끼니, 집오리들은 새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나태는 집오리들과 어울리며 신나게 놀았다.
이렇게 수여 일을 정신없이 놀다가 문득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니, 야생에서 자유롭게 날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나태는 다시 날아오르려고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살이 많이 찐 데다 나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나태는 ‘안되겠다. 오늘만 더 놀고 내일 날아가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은 몸이 더 무겁고 힘들어서 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일’ ‘내일’ 하며 반복하다 몇 달이 후딱 지나갔다.
어느 날 하늘에 들오리 떼들이 아름다운 수를 놓으며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난 들오리는 날아오르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때는 늦었다. 더 이상 날 수 없었다. 수차례 내일 내일을 반복하다 결국 삶이 초라해진 것이다.
불교에서도 ‘한고조’라고 하여 들오리 이야기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한고조 새가 자기 집을 짓지 않고, 노는 것에 정신 팔려 지내다 결국 얼어 죽는다는 이야기다. 인생에서 성공이 어찌 쉬운 일인가? 꼭 성공이 아닌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삶을 살기에는 흥청망청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영부영 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노년에 이른다. 필자 또한 그러하다.
스님들도 젊을 때는 이 공부 저 공부 하며 지내면서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말년 들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이뤄지지 않음을 아쉬워한다. 아마 이런 점은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에서 해놓은 것은 없고, 속절없이 나이만 드니 그 절박함이 삶의 정체성을 생각하며, 후회한다. 그래서 중ㆍ노년이 되었을 때는 시간이 속절없이 빨리 간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삶에 대해 회한이 들기 시작하고, 인생에 철이 들면서 시간에 대한 절박함이 드는 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젊은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것이요, 혹 나이 들었다고 생각할지라도 삶의 진취성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해보자.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