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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달빛 속 반딧불을 보며

[한희철 목사님] 달빛 속 반딧불을 보며

by 한희철 목사님 2020.06.16

사람마다 잠버릇이 있습니다. 한 번 잠에 들면 세상모르고 자는 것이 잠에 관한 제 버릇입니다. 자리에 누우면 이내 잠에 들기도 하거니와, 특별한 일이 아니면 화장실에 가기 위해 깨는 일도 드물고,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나는 법도 드뭅니다. 잠에 관해서라면 큰 복을 타고난 셈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는 허름한 집을 오랜만에 찾고 보니 마치 호랑이라도 튀어나올 기세였습니다. 사방 망초대가 자라 올라 한 걸음을 내딛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풀과 씨름하느라 하루 종일 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한낮의 뜨거움이 여간 아니었지만 이왕 시작한 일, 종일 일이 이어졌습니다. 흘리는 땀이 온몸을 적시기를 여러 번, 덕분에 중간중간 벌컥벌컥 물을 들이마셔야 했습니다.
피곤한 중에도 잠을 자다 목이 말라 일어났던 것은 필시 전날 그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나오며 보니 밖이 훤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 한 새벽이었습니다. 하늘에 둥근 달이 걸려 있었습니다. 막 보름이 지난 것인지 커다란 둥근 달이 모두가 잠든 대지를 은은한 빛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모두를 밝힐 만큼의 빛을 쏟아놓으면서도 어찌 자신은 눈부시지 않은 것일까, 세상에 저런 빛의 근원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달을 연모하는 것인지 별 하나가 달 바로 곁을 지키고 있었고요.
툇마루에 걸터앉아 어둠을 응시합니다. 누가 먼저 부른 것인지 소쩍새 울음소리가 이 산 저 산 이어지고, 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처럼 봄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리가 작아진 개구리울음소리가 잔잔하고, 이따금 심벌즈 울리듯 짐승인지 새 인지 구분하기 힘든 기괴한 소리도 이어졌습니다.
한 새벽 달빛에 취하고 들려오는 소리에 취해 있을 때 느닷없이 나타난 파란빛의 춤, 반딧불이었습니다. 깜박깜박 불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어둠 속을 날아갑니다. 여기서 빛이었다가 잠깐 사이 어둠이 되고, 어둠이다 싶은데 잠깐 사이 빛으로 나타나고, 그야말로 반딧불은 광속으로 날고 있었습니다. 우윳빛 달빛 속 냇물 흐르듯 어둠을 빛으로 물들이는 반딧불의 군무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마침 다가오는 반딧불이 있어 손을 내밀자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손안으로 듭니다. 그리고는 손을 축복하듯 서너 번 불을 밝히더니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릅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 따뜻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다시 돌아와 걸터앉는 마루, 나도 자연의 일부였습니다. 대단하거나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달빛을 함께 받는 어둠 속의 일부일 뿐이었습니다. 은은한 달빛과 잠시 머물다 간 반딧불, 바로 그 순간이 은총이었습니다. 모든 순간 모든 존재는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