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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말없이 곁에 있기

[한희철 목사님] 말없이 곁에 있기

by 한희철 목사님 2020.06.30

구약성서 안에는 <욥기>가 있습니다. <욥기>는 인간이 경험하는 근원적인 고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난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고난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은 불가해한 것임을, 고난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무지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성서학자들은 <욥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유일한 민족이라 자부했던 그들에게 닥쳐온 고난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가져왔던 확고했던 믿음의 근저가 흔들리는 아픈 경험이었겠지요. 그런 경험 끝에 기록한 책이라니 더욱 눈여겨보게 됩니다.
욥은 누구에게나 부러움을 살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엄청난 재산, 아들 일곱에 딸 셋의 자녀들, 화목한 가정, 경건한 삶, 그런데 한순간 그 모든 것들을 다 잃고 맙니다. 심지어는 건강마저 잃고 말아 잿더미 위에 앉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어야 했습니다. 그런 욥을 보고는 아내마저도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말할 정도니까요.
욥에 관한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갔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이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좋은 소문은 걸어가고 나쁜 소문은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당하는 재앙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그런 불행이 내게는 찾아오지 않았다는 다행스러움으로, 부러움을 샀던 누군가의 복이 사라짐으로써 삶이 아주 불공평한 것만은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그런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 미묘하게 뒤섞이면서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갔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세 친구가 욥을 찾아옵니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욥과 친구들은 서로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얼굴이 이상해지면 불행한 일이 닥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남쪽, 동쪽, 북쪽에서 왔지만 한 날 한 시에 도착을 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욥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던 친구들은 일제히 소리 질러 울기 시작합니다. 기가 막힌 모습에 걸음을 멈추고, 두 눈이 젖고, 흐느끼고, 그러다가 대성통곡하기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마음을 찢듯이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머리에 뒤집어씁니다. 하늘에 재를 날리는 것은 분노와 모욕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친구로서 고통을 당하는 친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무기력함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세 친구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밤낮 칠일 동안을 욥과 함께 앉아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단순한 기쁨>에서 말하는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두 가지 태도만이 바르다고 마음속 깊이 확신한다. 침묵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라는 말을 공감하게 합니다.
고난 당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책망이나 설교가 아닙니다. 다만 곁에 있어주는 것, 곁에 있되 말없이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위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