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설악이 내게 질문을 던지다
[권영상 작가님] 설악이 내게 질문을 던지다
by 권영상 작가님 2020.07.01
설악을 찾았다. 인적을 피해 주 중에 들어갔다. 설악산처럼 큰 산속에 혼자 들어가 혼자 길을 찾아간다는 일은 짜릿하다. 설악산만한 우주. 그 속에 혼자 놓인 나는 불안하기도 하고, 또 외롭기도 하고, 그것이 자칫 인생 같기도 해서 좋다.
속초행 버스는 인제 백담사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고 가버린다. 여기가 용대리. 이제부터 나는 혼자다. 멀지 않아 해가 질 시간. 버스를 길 속으로 보내고 나는 개울에 내려가 발을 씻은 뒤 황태 국밥집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어둑어둑해진다. 해마다 머물던 민박집을 찾아 나섰다. 주인도 점잖고 무엇보다 외딴 집이라 조용히 밤을 보내기에 좋은 집이 그 집이다. 다리를 건너 옥수수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 불 켜진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왠지 낯설어 보였다. 없던 감나무가 마당에 있고, 집이 웅숭깊다. 번잡한 음식점 간판이 달려있다. 분명 내가 머물던 그 집 위치인데 그 집이 아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그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도느라 6월 밤이 그만 깜깜해졌다.
다시 한길로 나왔다. 매표소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을 때다.
“방 구하러 가시는 거요?”
등불 아래 늙수레한 노인이 나를 불렀다.
숙박비를 묻고 더 늦기 전에 방에 들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눕고 보니 영 잘못 든 집이다. 개구리들이 집을 에워싸고 나를 몰아낼 듯 울어댄다. 울어도 보통 우는 게 아니다. 술 취한 개구리들처럼 게걸스럽게 운다. 그냥 있다간 개구리울음 속으로 빨려들 것 같았다.
나는 주인장을 찾아뵙고 불만을 터뜨렸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그러나 주인장은 나를 이해하려는 미덕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개구리울음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이런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게 고민이오. 어쨌거나 이 숙소는 손님이 선택하지 않았소?”
주인장의 말이 밉기는 했지만 나의 성급한 선택에도 문제는 있었다.
“어쨌거나 방은 바꾸어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내일 마등령을 넘을 거니까 잠만은 충분히 자 두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옛사람들은 개구리울음도 개구리가 노래 부른다 했으니 좋은 노래 들으며 자는 셈 치시구려. 손님이 선택한 방이니까 손님이 좋은 방으로 만들어야지요. 안 그렇소?”
주인장은 능구렁이처럼 얼버무리고는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가 잔 집은 컨테이너 박스였고, 뒤쪽은 예상대로 모가 크는 무논이었다. 주인장을 찾았지만 주인장은 없고, 안집도 잠겨있었다. 나는 매표소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때우고 산행 중에 먹을 김밥을 챙겼다.
마등령을 넘는 동안 선택 타령을 하던 민박집 주인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 방을 선택하는 데는 한순간이 필요했다. 독채에 환한 방. 깨끗한 이불.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좋아요, 하고 이내 배낭을 벗었다. 그러나 그 한순간의 오판으로 나는 개구리 우는 밤을 길게 보내야 했다. 주인장의 말대로 도저히 좋은 밤을 보낼 수 없었다.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나는 여기까지 한 생을 살아왔다. 나는 물론 내가 한 선택들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했다. 그러고도 그때 만약 지금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설악이 불쑥 그런 질문을 던진다.
속초행 버스는 인제 백담사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고 가버린다. 여기가 용대리. 이제부터 나는 혼자다. 멀지 않아 해가 질 시간. 버스를 길 속으로 보내고 나는 개울에 내려가 발을 씻은 뒤 황태 국밥집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어둑어둑해진다. 해마다 머물던 민박집을 찾아 나섰다. 주인도 점잖고 무엇보다 외딴 집이라 조용히 밤을 보내기에 좋은 집이 그 집이다. 다리를 건너 옥수수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 불 켜진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왠지 낯설어 보였다. 없던 감나무가 마당에 있고, 집이 웅숭깊다. 번잡한 음식점 간판이 달려있다. 분명 내가 머물던 그 집 위치인데 그 집이 아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그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도느라 6월 밤이 그만 깜깜해졌다.
다시 한길로 나왔다. 매표소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을 때다.
“방 구하러 가시는 거요?”
등불 아래 늙수레한 노인이 나를 불렀다.
숙박비를 묻고 더 늦기 전에 방에 들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눕고 보니 영 잘못 든 집이다. 개구리들이 집을 에워싸고 나를 몰아낼 듯 울어댄다. 울어도 보통 우는 게 아니다. 술 취한 개구리들처럼 게걸스럽게 운다. 그냥 있다간 개구리울음 속으로 빨려들 것 같았다.
나는 주인장을 찾아뵙고 불만을 터뜨렸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그러나 주인장은 나를 이해하려는 미덕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개구리울음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이런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게 고민이오. 어쨌거나 이 숙소는 손님이 선택하지 않았소?”
주인장의 말이 밉기는 했지만 나의 성급한 선택에도 문제는 있었다.
“어쨌거나 방은 바꾸어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내일 마등령을 넘을 거니까 잠만은 충분히 자 두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옛사람들은 개구리울음도 개구리가 노래 부른다 했으니 좋은 노래 들으며 자는 셈 치시구려. 손님이 선택한 방이니까 손님이 좋은 방으로 만들어야지요. 안 그렇소?”
주인장은 능구렁이처럼 얼버무리고는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가 잔 집은 컨테이너 박스였고, 뒤쪽은 예상대로 모가 크는 무논이었다. 주인장을 찾았지만 주인장은 없고, 안집도 잠겨있었다. 나는 매표소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때우고 산행 중에 먹을 김밥을 챙겼다.
마등령을 넘는 동안 선택 타령을 하던 민박집 주인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 방을 선택하는 데는 한순간이 필요했다. 독채에 환한 방. 깨끗한 이불.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좋아요, 하고 이내 배낭을 벗었다. 그러나 그 한순간의 오판으로 나는 개구리 우는 밤을 길게 보내야 했다. 주인장의 말대로 도저히 좋은 밤을 보낼 수 없었다.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나는 여기까지 한 생을 살아왔다. 나는 물론 내가 한 선택들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했다. 그러고도 그때 만약 지금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설악이 불쑥 그런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