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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임천고치: 산수화론의 교과서

[강판권 교수님] 임천고치: 산수화론의 교과서

by 강판권 교수님 2020.07.10

산수화는 자연 생태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담고 있다. 중국 북송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泉高致)』는 산수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숲과 샘을 의미하는 ‘임천’은 물러나 거주하는 곳, 은자가 사는 곳,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을 뜻한다. 곽희의 산수화 이론서인 『임천고치』는 이후 중국과 한국 산수화의 교본이었다. 『임천고치』 중 권 1의 ‘산수훈(山水訓)’은 작품의 핵심이다. 군자가 산수를 아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곽희에 따르면 군자가 산수를 사랑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항상 마음이 두는 것은 언덕 동산에서 인간의 본성을 기르는 것이고, 늘 즐기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풍경인 천석(泉石)에서 휘파람 불며 노니는 것이고, 늘 힘쓰는 것은 고기 잡고 땔 나무하며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는 것이고, 늘 가까이하는 것은 우짖는 원숭이와 하늘 나는 학이다.
내가 곽희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산수 보존이 인간의 삶에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연 생태는 곧 인간의 본성이고, 산수는 인간 본성의 어머니다. 인간이 산수를 훼손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본질을 허무는 것과 같다. 누구나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한 이유는 숲과 계곡이 곧 자신의 원초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근의 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 이유는 산이 방역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이 방역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숲과 계곡 덕분이다. 이런 점에서 숲이 울창한 우리나라의 산은 코로나19 시대에 매우 중요한 방역 자산이다. 문제는 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다.
『임천고치』에는 산수에 대한 관점, 즉 ‘삼원설(三遠說)’을 소개하고 있다. 삼원은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를 바라보는 고원(高遠), 산 앞에서 산 뒤를 엿보는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평원(平遠)이다. 삼원은 산수를 그리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이론이다. 산을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그만큼 산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내가 『임천고치』에서 주목하는 또 하나는 화면상의 산(山)·목(木)·인(人)의 크기에 대해 상대적 관계를 설명한 ‘3대(三大)’다. ‘삼대’는 산수와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의 이 같은 인식은 생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산은 물을 혈맥으로 삼고, 초목을 모발로 삼으며, 안개와 구름을 신묘한 수식으로 삼는다. 그래서 산은 물을 얻어야 활기가 있고, 초목을 얻어야 화려하며, 안개와 구름을 얻어야 빼어나게 곱다. 물은 산을 얼굴로 삼고, 정자를 눈썹과 눈으로 삼고, 고기 잡고 낚시하는 장면을 정신으로 삼는다.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곧 생태다. 인간이 위기를 맞는다는 것은 언제나 유기적인 관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만들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