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스님] 마음의 여백
[정운 스님] 마음의 여백
by 정운 스님 2020.07.13
“청춘은 붉은색도 아니고 사랑은 핑크빛도 아니더라. 마음에 따라서 변하는 욕심 속 물감의 장난이지 그게 인생인 거야 전화기 충전은 잘 하면서 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사네. 마음에 여백이 없어서 인생을 쫓기듯 그렸네.”
위 내용은 누구나 알만한 내용으로, 정동원 가수의 ‘여백’이라는 노래 가사이다. 처음에 그 내용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현대인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서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를 한 번쯤 사유케 한다.
조선 시대 화악 문신(華嶽文信, 1629∼1707) 스님은 출가했지만 글자를 몰라 호구지책으로 농기구 보부상을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스님들도 살림이 어려워 경제활동을 하였다. 곧 낫ㆍ호미ㆍ괭이ㆍ보습 같은 농기구를 잔뜩 짊어지고 이 절 저 절 다니며 행상을 한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스님이 <화엄경> 구절을 듣고, 자신이 승려로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자괴감을 갖고 이때부터 수행(명상) 하여 크게 깨달았다.
또 조선 시대 고한(孤閑, 1561∼1647) 스님은 12세에 출가해 풀로 신을 삼아 파는 등 경제활동을 하였다. 어느 해 고한 스님은 세포 16필을 짜서 여기저기 팔러 다니다가 길가에 앉아 잠시 조는 사이에 세 포를 도난당했다. 그때 잃어버린 옷감으로 상실감이 매우 컸는데, 스님은 이 길로 장사를 접고, 수행에만 몰두해 깨달음을 이루었다.
두 스님 모두 조선시대 큰 스님들이다. 두 스님은 경제적인 물건을 잃고 그 상실감에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되었고, 승려로서의 삶에 진정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 뒤에 진로를 바꾸었던 것이다.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어떤 모습인가? 누구나 인생길에 허우적거리며 여백이 없이 살아간다. 노래 가사 대로 전화기 충전은 서둘러 잘하고, 물건 잃어버리면 온 집안을 뒤져서라도 찾아낸다. 찾지 못하면 타인을 의심까지 한다. 배고프지 않아도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욕심을 채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고 사는 셈이다. 말 그대로 조삼모사朝三暮四이다. 필자도 승려이지만, 도시에서 살면서 강의와 원고를 쓰다 보니 진정한 쉼[休]이 없이 살아간다. 쓰잘 데 없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셈이다.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냥저냥 흘러가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본다. 어느 한 수행자[엄양 존자]가 조주(趙州, 778~897) 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을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내려놓아라[放下着].”
“이미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무얼 내려놓으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다시 짊어지고 가거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들고 있고, 자신 능력 이외의 욕망에 허덕인다. 자신의 정체성을 사유할 마음의 여백을 가져보자. 그리고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조금만 내려놓자.
위 내용은 누구나 알만한 내용으로, 정동원 가수의 ‘여백’이라는 노래 가사이다. 처음에 그 내용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현대인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서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를 한 번쯤 사유케 한다.
조선 시대 화악 문신(華嶽文信, 1629∼1707) 스님은 출가했지만 글자를 몰라 호구지책으로 농기구 보부상을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스님들도 살림이 어려워 경제활동을 하였다. 곧 낫ㆍ호미ㆍ괭이ㆍ보습 같은 농기구를 잔뜩 짊어지고 이 절 저 절 다니며 행상을 한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스님이 <화엄경> 구절을 듣고, 자신이 승려로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자괴감을 갖고 이때부터 수행(명상) 하여 크게 깨달았다.
또 조선 시대 고한(孤閑, 1561∼1647) 스님은 12세에 출가해 풀로 신을 삼아 파는 등 경제활동을 하였다. 어느 해 고한 스님은 세포 16필을 짜서 여기저기 팔러 다니다가 길가에 앉아 잠시 조는 사이에 세 포를 도난당했다. 그때 잃어버린 옷감으로 상실감이 매우 컸는데, 스님은 이 길로 장사를 접고, 수행에만 몰두해 깨달음을 이루었다.
두 스님 모두 조선시대 큰 스님들이다. 두 스님은 경제적인 물건을 잃고 그 상실감에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되었고, 승려로서의 삶에 진정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 뒤에 진로를 바꾸었던 것이다.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어떤 모습인가? 누구나 인생길에 허우적거리며 여백이 없이 살아간다. 노래 가사 대로 전화기 충전은 서둘러 잘하고, 물건 잃어버리면 온 집안을 뒤져서라도 찾아낸다. 찾지 못하면 타인을 의심까지 한다. 배고프지 않아도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욕심을 채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고 사는 셈이다. 말 그대로 조삼모사朝三暮四이다. 필자도 승려이지만, 도시에서 살면서 강의와 원고를 쓰다 보니 진정한 쉼[休]이 없이 살아간다. 쓰잘 데 없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셈이다.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냥저냥 흘러가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본다. 어느 한 수행자[엄양 존자]가 조주(趙州, 778~897) 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을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내려놓아라[放下着].”
“이미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무얼 내려놓으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다시 짊어지고 가거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들고 있고, 자신 능력 이외의 욕망에 허덕인다. 자신의 정체성을 사유할 마음의 여백을 가져보자. 그리고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조금만 내려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