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가만히 사랑하기
[한희철 목사님] 가만히 사랑하기
by 한희철 목사님 2020.07.14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돌고래와 수영하고 싶나요? 국내에서 돌고래 타고 사진 찍기는 이곳에서만 가능합니다.’ 거제에 있는 한 씨월드에서 내건 광고였습니다. 멸종 위기종인 돌고래를 서프보드처럼 타게 하고 돈을 받는 것을 상품화한 것이지요. 그런 드문 체험을 하는 일에 지불해야 하는 돈은 돌고래는 12만 원, 세계 자연보존연맹이 멸종위기근접종으로 지정한 벨루가(흰색 고래)는 14만원이었습니다. 마음껏 바다를 유영해야 할 돌고래를 잡아다 넓은 수족관에 가두고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도구로 사용을 하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납니다.
지난주 ‘아름다운 사회’란에 썼던 꾀꼬리 이야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둥지로 드나드는 꾀꼬리 사진을 더 잘 찍기 위해 시선을 가리는 주변 나무의 가지를 다 잘라냈다니 말이지요. 그런 일이 알려지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신들이 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둥지를 튼 나무까지 잘라내고 아예 둥지를 없애버렸다니 한숨이 나옵니다. 두 마리였다는 새끼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어미가 어디 안전한 곳으로 옮겼을까요, 아니면 날갯짓 한 번 하지 못한 채 죽고 말았을까요?
어느새 꾀꼬리가 멸종 위기 관심 대상이 되었다니 아예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겠지요. 더는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흔하지 않을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터이고요.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정말로 그 사진을 바라보는 마음까지 아름다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진을 찍기까지의 과정을 모를 수 없을 터, 다른 이들이 다 아름답다 해도 사진을 찍은 이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싶습니다.
푸른빛이 바다처럼 펼쳐진 나무 사이를 노란색 꾀꼬리가 나는, 옥구슬이 쟁반을 구르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그 멋진 곳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잘 익은 빨간 보리수 열매와 자줏빛 오디 열매를 먹기 위해 날아와 잠깐 가지에 앉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곳입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꾀꼬리를 바라보는 덕분에 하늘을 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때와는 꾀꼬리의 몸집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과, 꾀꼬리의 노란빛이 멀리서 볼 때보다도 훨씬 더 짙은 빛깔이라는 것, 온통 노란빛이 아니라 머리 부분과 날개 아랫부분에 검은빛이 있어 노란빛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알고 있는 곳을 알려 사람들을 부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자랑삼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다만 꾀꼬리가 마음껏 하늘을 날아 여름 하늘과 숲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찬란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이 세상이 얼마나 눈부신지를 돌아보게 하는 꾀꼬리를 고마움으로 바라볼 요량입니다. 그의 날갯짓과 노래를 가만히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은총이 없고, 그보다 더 꾀꼬리를 사랑하는 길이 없다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아름다운 사회’란에 썼던 꾀꼬리 이야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둥지로 드나드는 꾀꼬리 사진을 더 잘 찍기 위해 시선을 가리는 주변 나무의 가지를 다 잘라냈다니 말이지요. 그런 일이 알려지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신들이 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둥지를 튼 나무까지 잘라내고 아예 둥지를 없애버렸다니 한숨이 나옵니다. 두 마리였다는 새끼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어미가 어디 안전한 곳으로 옮겼을까요, 아니면 날갯짓 한 번 하지 못한 채 죽고 말았을까요?
어느새 꾀꼬리가 멸종 위기 관심 대상이 되었다니 아예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겠지요. 더는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흔하지 않을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터이고요.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정말로 그 사진을 바라보는 마음까지 아름다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진을 찍기까지의 과정을 모를 수 없을 터, 다른 이들이 다 아름답다 해도 사진을 찍은 이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싶습니다.
푸른빛이 바다처럼 펼쳐진 나무 사이를 노란색 꾀꼬리가 나는, 옥구슬이 쟁반을 구르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그 멋진 곳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잘 익은 빨간 보리수 열매와 자줏빛 오디 열매를 먹기 위해 날아와 잠깐 가지에 앉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곳입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꾀꼬리를 바라보는 덕분에 하늘을 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때와는 꾀꼬리의 몸집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과, 꾀꼬리의 노란빛이 멀리서 볼 때보다도 훨씬 더 짙은 빛깔이라는 것, 온통 노란빛이 아니라 머리 부분과 날개 아랫부분에 검은빛이 있어 노란빛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알고 있는 곳을 알려 사람들을 부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자랑삼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다만 꾀꼬리가 마음껏 하늘을 날아 여름 하늘과 숲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찬란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이 세상이 얼마나 눈부신지를 돌아보게 하는 꾀꼬리를 고마움으로 바라볼 요량입니다. 그의 날갯짓과 노래를 가만히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은총이 없고, 그보다 더 꾀꼬리를 사랑하는 길이 없다 여겨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