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 교수님] 삶: 보물찾기
[강판권 교수님] 삶: 보물찾기
by 강판권 교수님 2020.07.24
삶은 보물찾기다. 인생은 곧 자신의 능력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보물찾기는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즐겼던 놀이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보물을 찾는데 게으르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의 보물에 관심을 갖는다. 어른들이 자신의 보물을 찾지 않는 이유는 자신과 보물찾기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몸속에 숨어 있는 보물을 모두 찾지 못한다. 그만큼 인간의 몸속에는 무한한 보물이 숨어 있다.
사람마다 무한한 보물을 갖고 있지만 보물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아주 귀한 보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보물일 수 있다. 그래서 각자가 지닌 보물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보물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비교하는 순간 몸속의 보물은 찾을 수 없다. 보물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찾는 자세다.
삶의 보물을 찾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접 찾아야 한다. 자신의 보물은 결코 다른 사람이 찾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법은 어린 시절 보물찾기 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에 즐겼던 보물찾기 놀이는 누군가가 보물을 숨겨두면 직접 찾았다. 학창시절의 보물찾기 놀이를 떠올려보면, 선생님은 학생들이 보물을 쉽게 찾지 못하도록 이곳저곳에 꼭꼭 숨긴다. 삶의 보물도 몸속 구석구석에 꼭꼭 숨어 있다. 선생님이 숨겨둔 보물은 아주 먼 곳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도 있다.
보물을 숨기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심리를 이용한다. 학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숨겨두고 허를 찌른다. 이는 마치 손자병법의 허허실실과 같은 전략이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보물을 찾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특히 자신이 숨겨놓은 보물을 쉽게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띤다.
보물찾기는 아주 즐거운 놀이다. 삶의 보물찾기도 일종의 놀이와 같다. 그러나 삶의 보물찾기를 즐거운 놀이로 만들려면 우선 자신의 몸속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놀이가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삶의 중요한 조건이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즐거움의 대상은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즐거움의 대상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동안 누린 즐거움과 이별해야 한다. 세상에는 인간이 죽을 때까지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눈앞에 존재한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대상을 즐거움으로 삼지 않았을 뿐이다.
이별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적잖은 아픔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별 없는 만남은 없다. 이별을 경험한 뒤에야 새로운 만남이 가능하다. 갈잎나무는 매년 이별을 경험한다. 만약 갈잎나무가 자신이 만든 잎과 이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새로운 잎을 만들 수 있겠는가. 나무는 잎과 이별할 즈음 물을 공급하지 않는다. 물을 공급받지 못한 잎은 형형색색으로 땅에 떨어진다. 사람은 나무가 이별한 잎을 두고 아름답게 여긴다. 즐거움도 아픈 뒤에야 찾아올 것이다.
사람마다 무한한 보물을 갖고 있지만 보물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아주 귀한 보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보물일 수 있다. 그래서 각자가 지닌 보물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보물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비교하는 순간 몸속의 보물은 찾을 수 없다. 보물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찾는 자세다.
삶의 보물을 찾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접 찾아야 한다. 자신의 보물은 결코 다른 사람이 찾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법은 어린 시절 보물찾기 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에 즐겼던 보물찾기 놀이는 누군가가 보물을 숨겨두면 직접 찾았다. 학창시절의 보물찾기 놀이를 떠올려보면, 선생님은 학생들이 보물을 쉽게 찾지 못하도록 이곳저곳에 꼭꼭 숨긴다. 삶의 보물도 몸속 구석구석에 꼭꼭 숨어 있다. 선생님이 숨겨둔 보물은 아주 먼 곳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도 있다.
보물을 숨기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심리를 이용한다. 학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숨겨두고 허를 찌른다. 이는 마치 손자병법의 허허실실과 같은 전략이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보물을 찾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특히 자신이 숨겨놓은 보물을 쉽게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띤다.
보물찾기는 아주 즐거운 놀이다. 삶의 보물찾기도 일종의 놀이와 같다. 그러나 삶의 보물찾기를 즐거운 놀이로 만들려면 우선 자신의 몸속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놀이가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삶의 중요한 조건이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즐거움의 대상은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즐거움의 대상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동안 누린 즐거움과 이별해야 한다. 세상에는 인간이 죽을 때까지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눈앞에 존재한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대상을 즐거움으로 삼지 않았을 뿐이다.
이별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적잖은 아픔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별 없는 만남은 없다. 이별을 경험한 뒤에야 새로운 만남이 가능하다. 갈잎나무는 매년 이별을 경험한다. 만약 갈잎나무가 자신이 만든 잎과 이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새로운 잎을 만들 수 있겠는가. 나무는 잎과 이별할 즈음 물을 공급하지 않는다. 물을 공급받지 못한 잎은 형형색색으로 땅에 떨어진다. 사람은 나무가 이별한 잎을 두고 아름답게 여긴다. 즐거움도 아픈 뒤에야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