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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 삶의 과정이 곧 행복 목적지

[정운 스님] 삶의 과정이 곧 행복 목적지

by 정운 스님 2020.08.04

조선 중기, 숙종은 종종 한밤중에 거리를 다니며 백성들의 생활을 살폈다. 어느 날밤 허름한 집 앞에 멈춰 서서 들으니, 그 집 식구들의 웃음이 넘쳐났다. 양반들이 사는 대궐 같은 집을 지날 때도 듣지 못하던 활기찬 소리였다.
숙종이 문틈으로 방안을 보니, 방안에는 3대가 사는 것으로 보이는데, 모두들 해진 옷을 입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새끼를 꼬고 있고, 아이들은 짚을 고르며, 할머니와 엄마는 빨래를 밟으며 정리하고 있었다. 가족이 모두 근심 걱정 없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숙종이 주인에게 ‘사는 형편이 괜찮으냐?’고 물었다. 주인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도 빚도 갚아가며, 저축도 하면서 살고 있으니, 웃음이 납니다.’
궁궐로 돌아온 숙종은 허름한 오두막집에 3대가 살면서 빚을 갚고 저축한다는 점이 궁금했다. 숙종은 며칠 후 다시 그 집을 방문해 주인에게 ‘어떻게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빚을 갚고 저축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공양하는 것 자체가 나를 키워준 것에 빚을 갚는 것이요, 제가 늙어서 의지할 자식이 있어 애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 저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키우는 것 자체가 당연한 것이요, 매우 평범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자체를 최상의 행복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행복의 기준이 무엇일까? 어떤 이는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높은 명예를 얻어야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으며,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행복에 대한 관념이 사람마다 다른 주관적인 문제로 ‘누가 옳다 그르다’고 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돈과 명예, 사랑을 얻었다고 하면 그것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66㎡ 아파트를 매입하고 행복해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살고 있는 99㎡ 아파트를 보니, 배가 아팠다. 수년을 고생고생해서 99㎡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는데, 다음 날부터 또 괴로웠다. 132㎡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보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의 욕망이 언제 끝날 것인가?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욕망을 꿈꾸며, 그 욕망이 채워지지 못하면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긴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반복할 텐데, 도대체 언제 행복할 수 있는가?!
당나라 시대, 임제 선사(?~866) 말씀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바로 지금, 여기일 뿐 다른 시절은 없다[卽是現今 更無時節]” 자신이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자신이 현재 서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신이 함께 하는 사람과 웃으며 살아가는 것, 이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숙종 때의 가난한 백성처럼, 현재의 순간순간의 삶의 과정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