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지푸라기 하나님
[한희철 목사님] 지푸라기 하나님
by 한희철 목사님 2020.08.05
목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설교자로 살아가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서너 번 설교를 합니다. 설교를 하는 일은 여간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호미로 광맥을 찾듯 말씀의 뜻을 찾아야 하거니와, 그것을 삶의 현장에 접목시켜야 하니 쉬울 수가 없습니다.
설교를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말씀을 듣는 청중들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나이, 성별, 직업, 형편과 사정, 관심사 등 매우 다양한 청중들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씀을 듣습니다. 모두에게 의미 있는 말씀이 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은 구약성서 안에 있는 <욥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고난에 대한 글 중 가장 진지하고 심오한 글로 여겨지는 말씀입니다. 욥의 고난을 생각하며 오늘의 고난을 이해하고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설교의 어려움 중의 하나는 제목을 정하는 일입니다. 거의 모든 글에 제목이 붙어 있듯이 설교에도 제목을 정합니다. 나눌 말씀의 내용을 짧게 함축하는 일이니,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 주 설교 제목은 ‘지푸라기 하나님’이었습니다.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여러 권의 책을 참조로 하는데, <욥기>를 나누며 참조하는 책 중의 하나가 <아! 욥>이라는 책입니다. ‘지푸라기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 책에서 만난 표현이었습니다. 그 표현은 정호승 시인의 ‘지푸라기’라는 시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먼지를 일으켜 바람 따라 떠도는 게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신을 오직 기다릴 뿐이다/ 내일도 슬퍼하고 오늘도 슬퍼하는/ 인생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다/ 물과 바람과 맑은 햇살과/ 새소리가 섞인 진흙이 되어/ 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 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한 욥을 위해 멀리서 세 친구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세 친구는 욥에게 위로가 되는 대신 아픔을 더합니다. 욥에게 충고하고 책망하고 설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때마다 욥은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때로는 당당하게 따지며 항의하고, 때로는 절박하게 호소를 합니다.
하지만 욥의 기도는 대부분 외면당합니다. 독백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침묵하고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욥에게 있어 하나님은 ‘지푸라기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 하나님’이었습니다.
설교 시간 ‘지푸라기’ 시를 읽으며 마음은 떨렸고 눈가는 젖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지푸라기가 된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설교를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말씀을 듣는 청중들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나이, 성별, 직업, 형편과 사정, 관심사 등 매우 다양한 청중들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씀을 듣습니다. 모두에게 의미 있는 말씀이 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은 구약성서 안에 있는 <욥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고난에 대한 글 중 가장 진지하고 심오한 글로 여겨지는 말씀입니다. 욥의 고난을 생각하며 오늘의 고난을 이해하고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설교의 어려움 중의 하나는 제목을 정하는 일입니다. 거의 모든 글에 제목이 붙어 있듯이 설교에도 제목을 정합니다. 나눌 말씀의 내용을 짧게 함축하는 일이니,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 주 설교 제목은 ‘지푸라기 하나님’이었습니다.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여러 권의 책을 참조로 하는데, <욥기>를 나누며 참조하는 책 중의 하나가 <아! 욥>이라는 책입니다. ‘지푸라기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 책에서 만난 표현이었습니다. 그 표현은 정호승 시인의 ‘지푸라기’라는 시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먼지를 일으켜 바람 따라 떠도는 게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신을 오직 기다릴 뿐이다/ 내일도 슬퍼하고 오늘도 슬퍼하는/ 인생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다/ 물과 바람과 맑은 햇살과/ 새소리가 섞인 진흙이 되어/ 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 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한 욥을 위해 멀리서 세 친구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세 친구는 욥에게 위로가 되는 대신 아픔을 더합니다. 욥에게 충고하고 책망하고 설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때마다 욥은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때로는 당당하게 따지며 항의하고, 때로는 절박하게 호소를 합니다.
하지만 욥의 기도는 대부분 외면당합니다. 독백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침묵하고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욥에게 있어 하나님은 ‘지푸라기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 하나님’이었습니다.
설교 시간 ‘지푸라기’ 시를 읽으며 마음은 떨렸고 눈가는 젖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지푸라기가 된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거룩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