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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상 작가님] 자명종을 나누어 주다

[권영상 작가님] 자명종을 나누어 주다

by 권영상 작가님 2020.08.06

그때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먼저 가는 곳이 있었다. 앞 베란다였다. 나팔꽃이 피고 있었다. 아침마다 대여섯 송이, 또는 십여 송이씩 피었다. 꽃 보는 일도 즐거웠지만 그 꽃을 한 송이 두 송이, 하며 세어 나가는 일도 즐거웠다.
나팔꽃이 우리 집에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아내를 의심할 뿐이다. 앞 베란다엔 지금도 꽤나 여러 개의 화분이 있다. 몇 개의 괜찮은, 나이 든 로즈마리거나 부켄베리아를 빼면 대부분 흔한 선인장이거나 큰괭이풀 화분들이다.
그 흔한 것들도 가지 하나 떨어지면 작은 그릇이나 화분에 담아 기어코 살려내는 사람이 아내다. 아내는 쌀뜨물 한 종지도 그냥 버리지 않고 그걸로 화분 속 식물을 살리는 데 썼다. 그런 까닭에 베란다엔 달개비며 바랭이도 버젓이 들어와 산다. 풀이라고 뽑아버려야 할 이유가 어디 있어! 그게 아내의 신조다.
나팔꽃도 그런 아내의 관용으로 우리 집에 들어왔을 것 같다. 그러니 화분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 그냥 큰괭이풀 화분에 나팔꽃은 더부살이를 했다. 신기하게도 더부살이하는 녀석들은 화분을 하나씩 차고앉은 녀석들보다 더 강인했다.
본척만척 둔 나팔꽃이 손을 뻗쳐 올리더니 창문을 가려놓은 문발을 그러잡았다. 근데 그게 일종의 도약대였다. 나팔꽃은 하루가 다르게 발을 타고 기어올랐다. 베란다 천장에 이르더니 누구의 허락도 없이 가로로 길게 묶어놓은 빨랫줄을 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덩굴줄기는 칡 줄기처럼 굵고 단단했고, 잎은 넓고 까슬하고 두터웠다. 길 옆 아무 데서나 보아오던 그런 나팔꽃 덩굴이 아니었다.
7월의 중순쯤이었다. 햇빛이 뜨거운 아침, 빨랫줄을 타던 덩굴에서 꽃 하나가 폈다.
“나팔꽃 폈어! 빨리 나와 봐!”
나는 아침잠에 빠져있는 아내를 깨웠다.
그만큼 기다려왔고, 기뻤다. 꽃은 자줏빛이 도는 청색. 꽃 테두리에 하얀 얼룩 띠가 있었다. 방금 길어올린 꽃물로 만든 꽃이라 꽃 빛깔이 진했다. 나팔꽃을 뽑지 않고 둔 보람이 있었다. 꽃은 마치 오늘이라는 시간이 배달한 아침 선물 같았다. 한 번 피기 어렵지 피기 시작하자 꽃은 아침마다 대여섯 송이씩 십여 송이씩 피었다. 우리는 날마다 이 아침이 주는 선물을 받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어쩜 자명종이네 뭐! 아침 6시에 우리를 깨우는.”
아내가 꽃을 보며 소리쳤다. 그러고 보면 나팔꽃은 소리 없이 우리의 아침잠 속으로 들어와 자주 꽃빛 알람을 울려온 거였다. 그때 나는 내 한 몸 출근하면 됐지만 아내는 딸아이 등교 준비를 해놓고 출근을 해야 했다. 밤엔 딸아이 과제를 돕고 집안일을 마치고 늦게 잤다. 그 당시 우리는 고단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그런 때였으니 나팔꽃은 꽃 이상의 자명종 노릇을 충분히 한 셈이었다.
나팔꽃은 빨랫줄을 타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문틈을 비집으며 한 장 한 장 앞 베란다 창문을 초록으로 뒤덮기 시작했다. 그해의 여름과 가을은 나팔꽃 잎사귀의 연둣빛 그늘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해 겨울, 우리는 꽃씨를 땄다. 씨앗 봉투를 만들어 직장 동료들에게,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자명종이에요. 시간은 아침 6시에 맞추어 놓았어요.”
다들 꽃씨를 받아들고 좋아했다. 그 씨앗은 씨앗을 낳아 지금도 어딘가에서 피고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