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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남근숭배 민속, 관광에 접목

[이규섭 시인님] 남근숭배 민속, 관광에 접목

by 이규섭 시인님 2020.08.14

관광업계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코로나로 발길이 묶였는데 7말 8초 황금 휴가철에 초유의 긴 장마까지 겹쳐 죽을 쑨다. 지난 주 중에 백암 온천을 거쳐 삼척 해신당을 둘러보는 1박2일 일정을 잡았는데 줄기차게 비가 온다. 일기예보도 오락가락 종잡을 수 없다. 떠나기 전 날 영주지방 도로관리 당국에 전화를 걸어 “36번 국도는 안녕한지” 안부를 물었다. “현재로선 안전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태백선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도로 곳곳이 유실됐다는 보도로 강행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길을 나섰다. 여행이란 일상의 틀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경북 북부지방에 내린 호우경보와는 달리 곳에 따라 간간이 빗줄기가 스쳐간다. 구황작물 메밀이 묵밥으로 변신하여 유명해진 순흥에서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길 위에 올랐다. 늦은 오후 도착한 백암 온천관광특구는 쇠락의 분위기가 역력하다. 버섯 모양 지붕의 관광안내소는 문이 잠겼고, 온천대욕탕도 한산하다.
다음 날, 낭만과 추억이 동해를 끼고 달리는 7번 국도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해마다 해신제를 지내는 삼척 신남마을엔 예상 시간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20년 전 이런저런 조건을 지키며 해신제 취재를 했다. 정월대보름 전 날 제관들이 모여 남근을 깎는 모습은 담장 밖에서 셔터를 눌렀다. 제관으로 뽑히면 집에 금줄을 치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했다.
‘남근봉헌제’는 바닷가 언덕에 위치한 해신당에서 정월 대보름날 0시에 시작한다. 해신당 안에는 분홍치마에 초록 저고리(20년 전엔 노란 저고리였는데)를 받쳐 입은 여인의 초상이 다소곳하다. 사당 안 왼쪽 귀퉁이에 굴비처럼 엮어 놓은 남근을 교체하는 게 주요 의례다. 남근은 풍어와 다산의 상징이며 해신제는 바다를 여성화했던 동해안 민간신앙의 한 흔적이라는 게 민속학자들의 견해다.
400여 년 이어온 해신제를 뒷받침 하는 전설은 애처롭다. 결혼을 앞둔 이 마을 처녀가 해초를 따러 나갔다가 갑작스런 풍랑에 휩쓸려 죽었다. 그 뒤 조업이 제대로 안 되고 해상사고가 잦아 서낭당을 짓고 남근목을 깎아 바친 후 고기가 많이 잡히고 사고가 없어졌다고 전해져 온다. 요즘은 스토리텔링이 부풀려지면서 처녀의 이름은 애랑이, 약혼남의 이름은 덕배라는 둥 덧칠한 이야기들이 곁가지를 친다. 애랑이가 살려달라고 애타게 소리치다 죽었다는 바위섬 ‘애바위’ 앞에 애랑이가 허우적거리는 모형을 세워 놓았다.
‘해신당공원’ 입장료는 3,000원. 입구 돌계단의 500년 된 노거수 향나무는 옛 그대로다. 해신당은 오른쪽 해안 언덕에 있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남근조각공원과 삼척어촌민속전시관을 만난다. 전시관은 공을 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첨단IT기술을 접목한 대형 수족관, 동해안 어민의 생활문화자료, 이곳의 특성을 살린 세계 각국의 성 민속이 관심을 끈다. 남근조각공원엔 남근조각경연대회를 통해 제작된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전시해 이채롭다. 남근숭배 민속을 관광과 연계한 착상은 성공적이다. 조금은 외설스럽지만 바다에 기대어 사는 어민들의 원초적 삶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