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스님] ‘개[dog]는 훌륭하다’?
[정운 스님] ‘개[dog]는 훌륭하다’?
by 정운 스님 2020.08.18
근자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 어떤 이는 자식을 낳지 않고,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키운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다. ‘반려伴侶’라는 단어 속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동물을 많이 키운다는 것을 내포한다. 이런 문화 분위기 탓인지 인터넷 매체나 TV프로그램에도 동물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며칠 전 TV에서 반려동물과 관련된 내용을 보았다. 주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사납게 하는 개를 전문가가 교화시키는 내용이었다. 그 내막은 이러하다.
‘봉구’라는 개가 주인공이다. 봉구의 엄마 보호자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봉구를 만나 병이 호전되었다. 둘의 관계가 깊이 애착되어갈 무렵, 보호자가 2년 동안 병원 생활로 봉구와 이별하였다. 딸이 간혹 와서 밥만 주었고, 봉구는 홀로 집에서 보냈다. 다시 돌아온 엄마 보호자에 대한 봉구의 애착은 집착할 정도로 컸다. 보호자가 갑자기 일어나서 움직이면 따라가서 발을 무는 행동을 했다. 개를 교정시키는 전문가는 엄마 보호자가 어딘가로 가버릴 것 같은 불안감의 표현이라고 했다. 또 봉구는 모르는 사람이 친절한 얼굴로 다가오면 봉구도 꼬리를 흔들며 좋아한 반면, 다소 거친 표정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이빨을 으르렁거리며 경계했다. 다행히도 봉구는 주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순한 개로 교정되었다.
이 프로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개와 사람의 관계가 사람과 사람의 인연과 똑같아서다. 인간과 인간ㆍ자연과 인간ㆍ사람과 반려견[동물]과의 인연 등 사람들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나 장애를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까?
엄밀히 따지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아닌 상대를 탓한다. 반려동물이 행동하는 것이나 나와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가 내게 보이는 행동이나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것들은 리트머스지[litmus-紙, 붉은색과 푸른색의 두 가지가 있다. 붉은색 종이를 알칼리성용액에 담그면 푸른색으로 변하고, 푸른색 종이를 산성용액에 담그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상대방에 따라 악인도 될 수 있지만, 선인도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 구조이다.
상대가 그대에게 거칠게 반응할 때[果]는 자신이 상대에게 거친 행동이나 말이 있었기 때문[因]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다중적이며,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원인을 먼저 생각하면 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상대의 단순한 말꼬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이어가며 계속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인간과 모든 대상은 인과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이든, 동물과 사람과의 관계이든, 생물과 사람과의 어떤 관계이든 간에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두 가지만 기억하자. 먼저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상대도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둘째 자신의 가치만이 최상이 아니다. 사람마다 소중히 여기는 가치 개념이 다를 뿐이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이중성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자.
‘봉구’라는 개가 주인공이다. 봉구의 엄마 보호자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봉구를 만나 병이 호전되었다. 둘의 관계가 깊이 애착되어갈 무렵, 보호자가 2년 동안 병원 생활로 봉구와 이별하였다. 딸이 간혹 와서 밥만 주었고, 봉구는 홀로 집에서 보냈다. 다시 돌아온 엄마 보호자에 대한 봉구의 애착은 집착할 정도로 컸다. 보호자가 갑자기 일어나서 움직이면 따라가서 발을 무는 행동을 했다. 개를 교정시키는 전문가는 엄마 보호자가 어딘가로 가버릴 것 같은 불안감의 표현이라고 했다. 또 봉구는 모르는 사람이 친절한 얼굴로 다가오면 봉구도 꼬리를 흔들며 좋아한 반면, 다소 거친 표정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이빨을 으르렁거리며 경계했다. 다행히도 봉구는 주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순한 개로 교정되었다.
이 프로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개와 사람의 관계가 사람과 사람의 인연과 똑같아서다. 인간과 인간ㆍ자연과 인간ㆍ사람과 반려견[동물]과의 인연 등 사람들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나 장애를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까?
엄밀히 따지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아닌 상대를 탓한다. 반려동물이 행동하는 것이나 나와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가 내게 보이는 행동이나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것들은 리트머스지[litmus-紙, 붉은색과 푸른색의 두 가지가 있다. 붉은색 종이를 알칼리성용액에 담그면 푸른색으로 변하고, 푸른색 종이를 산성용액에 담그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상대방에 따라 악인도 될 수 있지만, 선인도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 구조이다.
상대가 그대에게 거칠게 반응할 때[果]는 자신이 상대에게 거친 행동이나 말이 있었기 때문[因]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다중적이며,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원인을 먼저 생각하면 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상대의 단순한 말꼬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이어가며 계속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인간과 모든 대상은 인과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이든, 동물과 사람과의 관계이든, 생물과 사람과의 어떤 관계이든 간에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두 가지만 기억하자. 먼저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상대도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둘째 자신의 가치만이 최상이 아니다. 사람마다 소중히 여기는 가치 개념이 다를 뿐이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이중성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