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 교수님] 고추, 잠자리
[강판권 교수님] 고추, 잠자리
by 강판권 교수님 2020.09.07
고추가 붉게 익으면 가을이다. 붉은 고추를 따면 마당에 자리를 깔고 햇볕에 말린다. 이렇게 말린 고추를 ‘태양초’라 부른다. 그러나 태양초는 불규칙한 기후 때문에 상품으로 만들기가 아주 어렵다. 고작해야 자급자족할 뿐이다. 그런데도 시장에 태양초를 판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십중팔구 가짜다. 고추를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건조대를 만들어서 건조시켜야만 한다. 나의 고향에서도 꽤 많이 고추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붉은 고추를 건조대에서 말렸다. 건조대에서 말리는 과정도 결코 쉽지 않다. 당시에는 연탄 불로 말린 탓에 연탄가스까지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연탄 불로 붉은 고추를 말리기도 한다.
마당에 붉은 고추를 말리다 보면 붉은 고추 색깔을 닮은 잠자리가 날아든다. 고추잠자리가 하늘에 날아다니면 가을이 왔다는 징조다. 마당에 늘어놓은 붉은 고추에 고추잠자리가 앉으면 고추인지 잠자리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대빗자루로 고추잠자리를 잡기 위해 살포기 다가가면 금세 낌새를 채고 휙 날아간다. 몇 차례 같은 방법으로 고추잠자리를 괴롭히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잠자리를 의미하는 한자는 청정이다. ‘청’은 벌레충(蟲) 부수와 푸를청(靑)을, ‘정’은 벌레충 부수와 관아정(廷)을 합한 글자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청정’이라 불렀다. 일본 지형이 잠자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을 ‘청정국’이라 불렀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글을 모은 『정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청정국지」가 수록되어 있다. 고추잠자리의 한자는 ‘붉은 잠자리’를 의미하는 ‘홍(紅)청정’이다. 이덕무의 시에 고추잠자리와 관련한 시가 남아 있다.
「고추잠자리의 그림자를 희롱함」
자잘한 담장 무늬인가 질항아리 금이 간 듯
어지러이 흩어진 댓잎인가 개자(個字) 모양으로 푸르네
우물가 가을볕에 그림자 어른어른
가는 허리 하늘하늘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를 읊은 시는 이덕무를 제외하면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드물다. 그의 시에서도 고추잠자리가 가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물가 가을볕에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의 그림자를 포착한 시인의 안목이 돋보인다. 고추잠자리를 비롯한 잠자리의 그림자는 가을 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고추잠자리의 그림자를 포착하려면 관찰력이 필요하다. 고추잠자리가 한꺼번에 떼로 이리저리 날면 그림자도 이리저리 움직인다. 가을 햇살 내리쬐는 맑고 높은 가을날, 고추잠자리의 그림자놀이는 삶을 아주 즐겁게 만든다.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나는 모습은 가는 허리를 하늘하늘거리는 자태 덕분에 무척 아름답다. 순간순간 날렵하게 아래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하다. 고추잠자리가 나는 모습이 무척 빨라서 그 순간만은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디에도 걸림 없이 훨훨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처럼 살고 싶지만 요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마당에 붉은 고추를 말리다 보면 붉은 고추 색깔을 닮은 잠자리가 날아든다. 고추잠자리가 하늘에 날아다니면 가을이 왔다는 징조다. 마당에 늘어놓은 붉은 고추에 고추잠자리가 앉으면 고추인지 잠자리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대빗자루로 고추잠자리를 잡기 위해 살포기 다가가면 금세 낌새를 채고 휙 날아간다. 몇 차례 같은 방법으로 고추잠자리를 괴롭히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잠자리를 의미하는 한자는 청정이다. ‘청’은 벌레충(蟲) 부수와 푸를청(靑)을, ‘정’은 벌레충 부수와 관아정(廷)을 합한 글자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청정’이라 불렀다. 일본 지형이 잠자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을 ‘청정국’이라 불렀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글을 모은 『정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청정국지」가 수록되어 있다. 고추잠자리의 한자는 ‘붉은 잠자리’를 의미하는 ‘홍(紅)청정’이다. 이덕무의 시에 고추잠자리와 관련한 시가 남아 있다.
「고추잠자리의 그림자를 희롱함」
자잘한 담장 무늬인가 질항아리 금이 간 듯
어지러이 흩어진 댓잎인가 개자(個字) 모양으로 푸르네
우물가 가을볕에 그림자 어른어른
가는 허리 하늘하늘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를 읊은 시는 이덕무를 제외하면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드물다. 그의 시에서도 고추잠자리가 가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물가 가을볕에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의 그림자를 포착한 시인의 안목이 돋보인다. 고추잠자리를 비롯한 잠자리의 그림자는 가을 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고추잠자리의 그림자를 포착하려면 관찰력이 필요하다. 고추잠자리가 한꺼번에 떼로 이리저리 날면 그림자도 이리저리 움직인다. 가을 햇살 내리쬐는 맑고 높은 가을날, 고추잠자리의 그림자놀이는 삶을 아주 즐겁게 만든다.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나는 모습은 가는 허리를 하늘하늘거리는 자태 덕분에 무척 아름답다. 순간순간 날렵하게 아래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하다. 고추잠자리가 나는 모습이 무척 빨라서 그 순간만은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디에도 걸림 없이 훨훨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처럼 살고 싶지만 요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여유를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