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되살이와 덤
[한희철 목사님] 되살이와 덤
by 한희철 목사님 2020.10.29
‘되살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지요? 사전에서는 딱히 그런 표제어를 찾기가 어려운데, 어떤 자료에 의하면 내시들 중 사내의 기운이 다시 살아난 사람을 ‘되살이’라 일컫는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살았던 강원도 단강 사람들에게서 되살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죽을 사람이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나 이어가는 삶을 두고 ‘되살이’라 불렀습니다. 다시 살아난 삶이라는 뜻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 말을 듣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윗마을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십수 년 전 몸이 아파 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의사는 회복이 될 가망이 전혀 없다며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개울에서 빨래를 하다가 ‘병원 하얀 차’가 마을을 지나 아주머니 집으로 올라가는 걸 본 한 할머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했습니다. 이내 무슨 소식이 있겠구나 싶어 집으로 와서 두근두근 기다리는데 밤늦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일찍 올라가 봤더니,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쇠꼬챙이처럼 말라 뼈만 남은 몸을 방바닥에 뉘었는데, 상처 부위가 형편이 없어 정말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런 상태로 얼마나 갈까 동네 사람들 모두가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그런 것이 십 수 년의 일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아주머니는 건강하지가 못합니다. 조금만 일을 해도 숨이 차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해야 하는데, 그런데도 모자라는 일손을 메꾸느라 밤늦게까지 일을 합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아주머니 사정을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그런 아주머니의 삶이야말로 ‘되살이’라는 것이지요.
세상을 떠난 동네 할머니를 뒷산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 고생의 시간이 끝났으니 조금 더 오래 사셔도 좋았겠다고 말했을 때 같이 걷던 할아버지가 그랬습니다. 사람은 환갑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요즘은 그런 말도, 그런 넉넉한 손길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에 ‘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 제 값어치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거나 받는 물건을 이르는 말이지요. 어릴 적 어머니 심부름으로 장에 가면 심부름을 해서 기특하다는 칭찬과 함께 덤을 받고는 했습니다. 어떤 때는 산 물건보다도 덤이 더 넉넉할 때도 있었고요.
덤을 두고 많다 적다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저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마땅할 따름입니다.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선물처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되살이와 덤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삶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 삶 또한 되살이요 덤일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락받은 하루하루, 그게 어디 우리 것이겠습니까. 모든 순간을 은총으로 받아, 우리는 되살이와 덤의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 말을 듣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윗마을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십수 년 전 몸이 아파 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의사는 회복이 될 가망이 전혀 없다며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개울에서 빨래를 하다가 ‘병원 하얀 차’가 마을을 지나 아주머니 집으로 올라가는 걸 본 한 할머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했습니다. 이내 무슨 소식이 있겠구나 싶어 집으로 와서 두근두근 기다리는데 밤늦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일찍 올라가 봤더니,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쇠꼬챙이처럼 말라 뼈만 남은 몸을 방바닥에 뉘었는데, 상처 부위가 형편이 없어 정말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런 상태로 얼마나 갈까 동네 사람들 모두가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그런 것이 십 수 년의 일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아주머니는 건강하지가 못합니다. 조금만 일을 해도 숨이 차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해야 하는데, 그런데도 모자라는 일손을 메꾸느라 밤늦게까지 일을 합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아주머니 사정을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그런 아주머니의 삶이야말로 ‘되살이’라는 것이지요.
세상을 떠난 동네 할머니를 뒷산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 고생의 시간이 끝났으니 조금 더 오래 사셔도 좋았겠다고 말했을 때 같이 걷던 할아버지가 그랬습니다. 사람은 환갑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요즘은 그런 말도, 그런 넉넉한 손길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에 ‘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 제 값어치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거나 받는 물건을 이르는 말이지요. 어릴 적 어머니 심부름으로 장에 가면 심부름을 해서 기특하다는 칭찬과 함께 덤을 받고는 했습니다. 어떤 때는 산 물건보다도 덤이 더 넉넉할 때도 있었고요.
덤을 두고 많다 적다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저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마땅할 따름입니다.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선물처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되살이와 덤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삶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 삶 또한 되살이요 덤일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락받은 하루하루, 그게 어디 우리 것이겠습니까. 모든 순간을 은총으로 받아, 우리는 되살이와 덤의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